풀잎 시인 박성룡

이지엽


풀잎처럼 작은 매무새로
내리쬐는 햇살만큼 받아내던 시인
꼭 그만한 웃음을 웃고
꼭 그만한 동작으로 걸음을 걷던 시인

뭐가 좋은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무교동 막걸리집 부침개 먹으러
몸 통통거리며 얌실얌실
걸어가고 있는 시인

풀잎하면
풀잎 풀잎 하며
스타카토를 고개를 톡톡 내밀 것 같은 시인
연둣빛 휘파람 소리 내며
청계천 지나 파고다 공원까지
유유자적 나무처럼 걸어가는 시인

때로는 차라리 절구(絶句)보다
독(毒)한 술잔을 높이 들고* 싶어했던 시인

햇살 찰랑거리는 해남 바다
그러나 죄 짓지 못해

맑은 外燈처럼 켜 있던 흰 목련꽃**
착한 목련 꽃 시인

* **박성룡 시인의 「손」, 「백목련」중에서

 

<시작메모>
작달막한 체구의 박성룡시인(1934~2002)은 해남이 낳은 「풀잎」의 시인이셨다. 얌전한 샌님처럼 큰소리치는 법 하나 없이도 고향 후배들을 다 제압하셨다. 느릿한 말씨에서도 시의 위의가 느껴졌다. “푸른 휘파람소리”를 내며 “몸을 통통거릴” 우슬재 풀잎처럼 살고 있는 시인 "유연하면서도 섬세하고 감각적이면서도 명상적인 관조"(김종길)의 시인이었다.

 

 
 
<이지엽시인 약력>
-해남군 마산면 출신
-1982년 한국문학 백만원고료 신인상과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어느 종착역에 대한 생각>과 시조집<사각형에 대하여>외 다수.
-중앙시조 대상, 유심 작품상 등 수상, <현대시 창작강의>외 저서 다수.
-계간 <열린시학>과 <시조시학>주간. 현재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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