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 어란리 일이라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던 청년 박주정(54)이장. 그가 어란 청년회장을 맡다가 이장이 된 지도 벌써 6년째다. 49살에 처음 이장을 하게 됐으니 농촌에서 보기 힘든 젊은 이장이었다. 게다가 어란리 이장의 임기는 1년. 6번째 이장을 맡을 정도로 마을일에 열정적이다.

어란리에 들어서면 짭쪼롬한 바다 냄새가 풍기고 마을 곳곳에 놓인 부표와 그물, 밧줄 등이 곳곳에 보인다. 김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부유한 마을다운 풍경이다.

“어란리가 다른 마을보다 소득도 뛰어나지만 면적도 넓고 주민 수도 월등하게 많아요. 해남군에서 어란이 없었으면 큰 손해 봤었을 정도지”

어란리는 실 세대수가 250호, 주민수는 760명이나 돼 5반까지 두고 있다. 어란 주민들의 주 수입원인 바다일은 힘들어도 소득이 좋다보니 젊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온다. 청년회 인원이 100여명을 훌쩍 넘고, 50대까지 포함하면 200여명도 거뜬할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단다.

청년회는 5월부터 8월까지 매주 한 번씩 마을을 돌며 직접 방역에 나선다. 군에서 받은 연막을 이용해 마을 구석구석을 도는데, 마을 소유의 방역 기계까지 있을 정도다. 군에 의뢰하면 시일이 오래 걸리고 자주 하기 어렵지만 마을 청년들이 나서면 뚝딱이란다.

어란 방범대도 따로 운영하고 있을 정도고, 각 가정에서 내놓는 쓰레기들도 청년들이 수거하고 있다. “어란 청년들 대부분 고향이 이 마을이에요. 살기 좋고 수입이 있으니까 떠나지 않고, 객지로 나가도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요”

어란에 청년들이 모이는 것은 풍부한 바다자원 덕분이다. 어란 선착장을 가득 메운 어선들이 이를 증명해준다. 마을 주민들의 배만 200여 척 정도고, 배가 들락날락 하는 것만 해도 수백여 대는 훨씬 넘는다.

150여 가구가 김을 하고 30여 가구는 전복을 하고 있다. 11월부터 1월까지 바람 부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매일이 시장판이나 다름없단다. 저 멀리 서천이나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기 때문이다. 마을 연 수입은 수십억정도 될 거란다. 자반공장과 김공장도 두 곳씩 가동 중이다.

마을공동작업은 없지만 굴이나 낙지를 맨손어업으로 잡는 주민들도 있고, 여름 한 철 갯장어 잡이로 2000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주민들도 있다. 여름철 바다일이 휴식기인 틈을 타 마늘을 기르기도 한단다.

주민 대부분 바다일 종사, 소득 높아
힘든 뱃일 이겨내기 위한 공동체정신

어란리에서는 정월 초하루 당제를 지내고, 정월 대보름에는 헌식제를 지내고 있다. 용왕제도 지냈었지만 몇 년 전부터는 하지 않게 됐다. 박이장이 상쇠가 되어 40여명의 풍물패를 이끌며 지신밟기도 하고 있다. 힘든 바다일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공동체정신이 필요하다보니 꾸준히 제사를 지내고 있단다.

박이장은 매일 마을회관에 들러 마을 노인들의 안부도 묻고 집에 고장 난 가전은 없는지 살핀다. 65세 이상 노인이 150여명이나 되는 데다 독거노인도 30여가구가 살기 때문이다. 2년에 한 번씩 경로잔치도 열고 있다.

또 마을 노인들은 보일러가 고장 나거나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박이장에게 먼저 연락한다. 마을이 멀다보니 읍에 있는 기술자에게 맡기려고 하면 며칠씩 걸려 박이장이 나서게 됐다. 기술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는데 여러 번 고쳐 드리다보니 손에 익었단다.

이장에게는 주민들 사소한 것 하나까지 눈여겨보는 관찰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박이장. 하지만 주민수가 워낙 많다보니 쉬운 일이 아니다.

“주민들을 공평하게 대해야 하고 공적인 마을 일을 하는 입장이다 보니 주민들 사이에서 의견을 중재하는 게 가장 어려워요. 필요하다고 하는 걸 다 해드리고 싶지만 서로 정 반대의 의견을 내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래도 주민들이 설명하면 납득해줘서 다행이죠”

이장은 마을의 머슴이라는 박이장. 그런 생각 때문인지 농로포장이며 노인정 화장실수리 등 마을을 위한 사업을 했을 때 주민들이 칭찬해주는 게 가장 기쁘단다. 그가 어란 이장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임할 수 있는 원동력은 주민들의 칭찬인 셈이다. 고래를 춤추게 만든다는 칭찬은 박이장도 춤추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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