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 근방을 따라 쭉 이어지는 상가권 덕에 북적북적한 해남읍 고도리. 올해 고도리에서 읍내 최초의 여성이장이 탄생했다. 37년동안 고도리에 애정을 갖고 살아온 이금순(63)이장이다.

황산면 외입리가 고향인 그녀는 지난 1969년 결혼과 동시에 해남읍으로 이사를 왔다. 처음에는 남동리에 터를 잡고 월 3500원 세를 들어 살았더란다. 그러다 평동리를 거치고 고도리에 정착해 삶의 터전을 꾸렸다.

일하기를 좋아하는 적극적인 성격 덕분에 고도리 반장을 17년, 부녀회장을 8년간 해왔다. 마을일을 하다 보니 일을 하면 할수록 욕심이 생긴단다.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다.

이장이 되자마자 마을회관 보수사업을 신청해 주민들이 더욱 편하게 회관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상권을 어지럽히는 떴다방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남편은 이장하는 걸 반대했었어요. 열 번 잘하고도 한 번 못하면 싫은 소리 듣는 게 이장인데 왜 하느냐고요. 하지만 주민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보고 싶었어요. 한 번 한다고 했으면 끝까지 해나가야죠”

주민들은 그런 이금순 이장에게 여장부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675세대, 1339명이 사는 큰 마을이다 보니 여장부로 살아야 마을일을 당차게 해나갈 수 있을 거란다.

고도리 이장의 임기는 3년이다. 그 동안 한 가지라도 주민들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게 그녀의 목표다. 주민들에게 봉사하는 여장부로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런 그녀가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부분은 5일장이다. 농사를 짓는 34세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상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보니 5일장이 잘 돼야 주민들도 잘 살 수 있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고도리가 예전부터 상권이 발달했지만 인구수가 줄어들고 5일장보다 대형마트를 찾는 손님이 많아지면서 침체되고 있어요. 이런 문제를 주민들과 함께 해결해야 우리 마을이 더 발전할 수 있겠지요”

요즘 이 이장은 5일장이 열릴 때면 도로변을 점령한 좌판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거기에 장을 보러 온 손님과 장사차량이 뒤엉켜 발생하는 교통 혼잡도 큰 문제다. 군에 불법 좌판 단속을 요청한 상태지만, 이장으로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단다.

그녀는 오일장 내부가 정리되고 나면 마을공동사업으로 주민들과 함께 5일장에 가게를 내고 싶다는 꿈이 있다. 장날에만 운영하는 식당을 차려 주민들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단다.

“고도리에는 독거노인들도 많고 마땅한 벌이가 없는 분들도 있어요. 이런 분들과 주민들이 함께 힘을 합쳐 가게를 운영하고, 수익금을 조금씩 나눠드리거나 다시 마을에 환원하는 거죠. 일종의 사회적기업이라고 할까요?”

고도리 활성화 위해선 5일장 살려야
어려워도 정 나누는 공동체정신 자랑스러워

이 이장의 꿈은 고도리 주민들의 튼튼한 단합심이 바탕이다. 매일 20~30여명의 노인들이 마을회관에서 함께 밥을 지어 식사를 하는데, 군에서 지원되는 쌀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쌀 40kg가 한 달도 못 돼 동나기 때문이다.

상황을 알고 있는 주민들이 쌀을 기부하기도 하고, 반찬거리 살 때 보태라며 5만원, 10만원씩 찬조금을 낸다.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을 아껴 보태기도 하고, 직접 농사지은 농산품을 후원하는 정이 넘치는 마을이란다.

이런 주민들 덕분에 그녀는 이장할 맛이 난다. “어느 마을보다 더 단합심이 있다고 느껴요. 그래서 마을일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지요. 희생정신이 있어야 마을에 봉사할 수 있는데, 제 희생이 더 큰 기쁨으로 돌아오는 그런 마을이지요”

주민 편에 서서 일할 때 힘든 줄도 모른다는 이 이장. 올해는 지난해 무산됐던 상권 간판정리사업에 대해 주민 의견을 모아볼 계획이란다. 똑소리 나는 여장부 이장이 고도리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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