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환갑 넘으면 이장을 못한다고 그랬는데 지금은 환갑 넘은 사람이 더 많이 해. 농촌이 고령화되다보니 환갑 넘은 사람이 이장 못하면 여기서 이장 할 사람이 없제. 내가 삼산면에서 나이로는 세 번째여”

삼산 산림리 최경일(74)이장은 20여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산림리 주민들의 발이 되어왔다. 2년에 한 번씩 이장 경선을 했지만 그 때마다 주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꾸준히 이장을 맡을 수 있었던 건 파란만장했던 삶에서 얻은 철학 때문이란다.

최이장은 일본에서 태어났다. 최이장의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 당시 산림리에서 일본으로 넘어가셨기 때문이다. 아직도 유치원에서 수수깡으로 안경을 만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단다.

이후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하고, 7살이 되던 해 다시 산림리로 돌아왔다. 그 없던 옛날 시절이었지만 부모님은 10형제를 낳아 기르셨고, 조부모님과 고모할머니까지 무려 15명의 식구가 함께 복작거리며 살았다.

부모님을 따라 농사를 지었지만 먹고 살기 빠듯했고, 스무살 때 마을 선배를 따라 부모님께 말하지도 않고 군대에 지원했다. 당시 군대 기강이 엉망이었던 탓에 밥도 먹지 못하고 벌을 서기 일쑤여서 고생 꽤나 했다고.

육군본부 감찰로 근무하면서 야간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마련한 돈을 헌병에 빼앗기기도 했고, 제대 후 장사하기 위해 얻은 돈도 아는 사람에게 잃었다. 산림리로 되돌아와 결혼을 했지만 순탄치 않았다.

유독 정이 많은 최이장이었기에 보증을 서줬다가 돌려받지 못하기도 했고, 고구마 장사를 하다 부도도 났다. 다행히 우애가 돈독한 10형제가 조금씩 도와주고, 성실히 일해 빚을 갚았다.

아내와 아들을 먼저 보내는 가슴 아픈 일도 있었지만 남은 시간을 보람차게 보내고 싶어 가슴에 묻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최이장은 주민들에게 스스럼없이 장난도 치고 살갑게 대한다. 주민들의 삶을 이해하고 함께 정을 나누고자 하는 노력에서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지난 2008년 군정발전상을 받기도 했다.

“우리 딸이 그러더라고, 드라마에서 차압딱지 붙이는 모습을 보니까 옛날이 생각난다고. 내가 이래저래 많은 일들을 겪어보니 사람마다 각자 속모를 사정이 있겠지 싶어. 그래서 더 주민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아픈 상처 딛고 주민 이해하려 노력
더불어 살기 위해선 건강한 정신 필요해

최이장은 해남에서 가장 건강한 마을을 만드는 게 꿈이다. 그가 49살이던 때, 결핵에 걸려 2년 6개월 만에 나았던 적이 있었다. 당시 함께 결핵에 걸렸던 사람들은 모두 운명했기에 생명의 귀함과 건강의 소중함을 뼛속 깊이 느꼈단다.

보건소에서 진행하는 건강백세 프로그램으로 요가와 노래교실을 열기도 했고, 최근에는 동신대에서 진행하는 수영교실에 참가하고 있다. 최이장의 독려로 수영교실 수강생의 절반이 산림리 주민들이다.

또 산림리는 실 가구수가 48호, 120여명이 살고 있는데 퇴직 후 한적한 노년을 위해 내려온 주민들이 많아 다들 건강에 관심이 많다. 마을 여성들이 자체적으로 산악회를 꾸려 한 달에 한 번씩 등산을 하고 여행도 다닐 정도다. 아침이면 근처 대흥사로 산책 나서는 주민들도 많단다.

“우리 마을이 해남 514개 마을 중에서 여유로운 편에 속하지. 공직 등에 있다가 퇴직한 사주민도 많고, 발효식품이나 건설업 등 사업에 종사하기도 해 금전적으로도 여유가 있어. 심적으로도 안정되다 보니 주민들 관심사도 건강관리야”

산림리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은 14명. 10여년 전에는 버섯 작목반이 따로 꾸려질 정도로 버섯 재배도 많이 했었지만 지금은 65세 이상이 70%일 정도로 고령화 돼 2곳만 남았다. 주민들도 자신들이 조금씩 가꾸는 텃밭만 관리하고 산책을 자주 다닌단다.
따로 마을 자금은 없지만 매년 어버이날 어르신들에게 효도관광을 보내드렸다. 지난 2004년에는 경로효친마을 지정도 됐다. 앞으로는 근처에 실질적으로 체육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 생겨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많은 주민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마을이 됐으면 한단다.

최이장은 주민들의 정신적인 건강에도 신경을 쓴다. 여러 사람이 살다 보면 감정이 어쩔 수 없지만, 하찮은 감정은 없기 때문에 서로 양보하고 이해한다면 심신이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거란다.

“내가 만만한 존재여. 그래야 주민들이 다가오기 편하잖아. 주민들이 나한테 전화도 하고 찾아오는 거 보면 소통은 잘 되는 것 같아. 서로 이야기 하면서 속풀이도 하고 해결도 하고.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 있을 때 서로에게 잘하고 건강 챙기며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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