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처럼 따스한 마을이라는 마을비석이 인상적인 계곡 방춘리. 이 마을은 순천김씨 집성촌이다. 그렇다보니 한 동네 주민들은 이웃임과 동시에 가족이기도 하다. 김상대(66)이장도 순천김씨. 마을을 돌보는 게 가족을 돌보는 일이나 다름없단다.

김이장은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엔 농사를 꽤 지으셔서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냈단다. 다른 아이들이 고무신을 신을 때 운동화를 신었을 정도였다.

그러다 김이장이 27살이 되던 해, 아버지를 잃게 됐다. 간경화였다.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논과 식량창고를 남기고 모두 팔아 병원비에 보탰다. 결혼할 때 잔치에 쓰기 위해 길렀던 소와 돼지까지도 팔아야만 했었다.

“어린 동생들도 있었지만 돈은 벌면 되는 것이고, 아버지는 평생에 단 한 분밖에 없으니 어떻게든 잘 하고 싶었지. 내가 공부 안한 걸 마음 아파하시더라고. 지금 생각하면 후회되지, 왜 그땐 공부하라던 부모님 말씀을 안들었을까 싶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돈 맛을 알았다는 김이장. 자식에게 좋은 것 먹이고 입히고 싶은 것처럼 형제간에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장남으로서 줄줄이 딸린 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그만큼 벌기 힘들다는 걸 알았다는 의미에서다.

아버지의 병수발을 하기 위해 다니던 회사도 그만뒀던 상황이었기에 방춘리에서 농사를 짓게 됐다. 결혼 후 가정을 광주에서 꾸려 광주와 방춘리를 오가며 생활했는데, 바쁘게 광주와 해남을 오가면서도 이장을 두 차례나 지냈다.

젊은 사람이 이장을 해봐야 마을을 알 수 있다는 어르신들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지난해 다시 이장을 맡게 됐지만 그 때의 어르신들 말씀이 기억에 남는단다.

“이장을 다시 해 보니 요즘 시골은 돈이 없어. 특히 우리 마을은 노령화가 심해서 더 그래. 고구마 하나도 세어서 주고 살았던 옛날보다야 풍족하지만 생활수준도 물가도 높아졌잖아. 흥청흥청하던 사람들 수도 팍 줄어버렸고”

김이장이 방춘리에서 젊은 축에 속할 정도로 고령화가 심해졌다. 세대수 30호, 60여명정도가 생활하고 있는데 대부분 65세 이상이다. 마을일을 적극적으로 할 청년이 없어 아쉬운 마음이란다.

지난 2009년에는 김창호 전 이장과 힘을 합해 참살기좋은마을 사업을 진행했다. 방춘정과 방춘서원이 있어 마을 안을 돌담으로 바꿔 정비하고, 입구에 물레방아도 만들었다. 동백나무 숲도 정성스레 가꿔 전국대상을 수상했단다.

6년이 지난 지금은 주민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마을일이 힘에 부치게 됐다. 마을 행사를 해도 힘을 쓸 사람들이 적다보니 행사를 하는 것도 부담이 될 정도다. 노인의 날엔 면사무소에서 행사를 준비해줘 수월하게 치르지만, 마을 자체적으로 행사를 할 때면 텐트를 치는 것도 힘 꽤나 든단다.

고령화 심해져 마을행사도 힘들어
이장 할만한 젊은 청년 있었으면

경로잔치를 준비할 청년이 없어 경로잔치는 열지 않고, 유두날 농민의 날 행사때는 부녀회에서 음식을 장만해 다 함께 식사를 하고 동네 가꾸기 울력으로 마을 청소를 하고 있다. 주민들 집안에 환갑 등 경사가 있으면 조금씩 마을에 희사한 돈을 모아서 여행도 다닌다고.

마을 행사는 적지만 가족이다보니 다른 마을보다 더 똘똘 뭉칠 수 있단다. 음식을 나눠 먹는 건 흔한 일이고, 밭일을 하러 나가도 두런두런 주민들끼리 함께 나간다.

“가족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진짜 가족이니 항상 주민들을 위한 마음은 크지. 근데 내가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 살며 농사를 짓다보니 그게 힘들더라고. 농사지으면서 문중 일도 봐야하지, 마을일도 봐야하지, 집안일도 해야 하지”

농로 포장 등 마을사업을 하나씩 해나갈 때 마을 주민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가 뿌듯하지만, 혼자서 이런저런 일을 해야하다보니 마음만 앞설 때가 많은 상황이다.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청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란다.

특히 요즘 시골에서는 주민들 섬기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아직 부족한 것 같아 아쉽다. 입담 걸걸한 김이장이 마을 노인들과 이야기할 때는 부드럽게 말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나쁜 것은 과감히 버려야지. 요즘 시대가 변해가니 시골 분위기도 점점 달라지는데, 가족이니 함께 뭉쳐서 잘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함께 지내야지. 더 바랄게 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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