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사 가는 길

이지엽

구림구곡(九林九曲)
아홉 굽이 십리 숲길을 따라 대흥사 가는 길
그 길은 어머니의 젖무덤 같이 아늑한 길
숲 터널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무한량의 은혜를 한줌씩 뿌린다
짱짱하지 않아서 오히려 으늑한
그 아른함으로 유월은 넉넉히 넘을 것 같다
계곡물이 어서 오라 소리하고
맑은 물줄기 따라 돌에 까맣게 붙어 있는 다슬기가
초롱초롱 훤히 눈을 맑힌다
쭉쭉 뻗은 삼나무와 나도밤나무, 동백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이 풋풋하다
매미소리, 새 푸득 날아가는 소리,
일어나는 소리들 모두가 물소리를 머금었다
오감이 물파래같이 정갈해진다 이 상큼함을 어디 견줄까
흔들다리가 흔들흔들 찌든 마음 죄 흔든다
둥기둥 어화 둥둥 위아래로 몸이 뜬다
숲 터널 사뿐 돌아가는 끝자락
유선여관이 있다
숨어있는 애인 같은 여관
그 옆 계곡물에 몸을 누이고 싶다


<시작메모>
한시(漢詩)와 시름하지 않았으면 시를 썼을 한양대 정민교수와 전남도립대 최한선 교수랑 유선여관에서 1박을 하던 기억이 새롭다. 여관 옆에 계곡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온몸을 담그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밤새 그 물소리를 친구삼아 문학을 얘기해도 이튿날 거뜬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말간 바람소리 물소리 덕이었다.

 

 
 
<이지엽시인 약력>
-해남군 마산면 출신
-1982년 한국문학 백만원고료 신인상과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어느 종착역에 대한 생각>과 시조집<사각형에 대하여>외 다수.
-중앙시조 대상, 유심 작품상 등 수상, <현대시 창작강의>외 저서 다수.
-계간 <열린시학>과 <시조시학>주간. 현재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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