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면에서 주민수가 가장 적은 은산리. 총 주민수가 22명이다. 주민들 수를 헤아릴 때 손가락 발가락 다 쓰면 셀 수 있다는 농담아닌 농담이 가능할 정도다. 세대수는 14호로 옆마을 경도리보다 2세대가 많지만 혼자 사는 주민들이 있다 보니 주민수는 더 적다.

가족같은 분위기인 은산리에서 가장노릇을 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최상기(66)이장이다. 올해부터 이장을 맡게 됐다는 최이장은 은산리에서 태어나 한 마을 주민과 결혼까지 했다는 본토박이란다.

“우리 마을? 화기애애한 분위기 빼면 더 말할 게 없지. 몸이 어디 아프시다 그러면 금방 또 알게 되니 신경도 쓰고. 뭔 일 있으면 다 나한테 직접 얘기하제. 다른 마을은 수가 많으니 이장한테 직접 연락하기도 힘든데 여기는 그런 게 없지 하하”

마을 주민끼리 음식을 나눠 먹는 건 말할 것도 없단다.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나면 다음날 아침 주민들을 불러 모아 남은 제사음식으로 함께 식사를 할 정도라고.

단합이 잘 되다보니 주민들끼리도 봄·가을이면 1년에 3~4차례 여행도 함께 다닌다. 마을에 승용차가 4대 있는데, 주민 수가 적다보니 승용차 4대로도 다함께 다닐 수 있다. 그렇다보니 놀러 가자는 말이 나오자마자 바로 여행을 갈 수 있다며 요즘말로 하면 'LTE급 여행‘이란다.

“은산리 주민들 안 가본 데가 없어. 경주며 통영이며. 주민들끼리 돈 3~4만원씩 모아서 다니고 그러지. 아쉬운 건 주민수가 줄어서 버스를 대절하기는 어려워진 점이지. 버스에서 다같이 이야기도 하고 그래야하는데. 그래서 승합차 렌트해서 가기도 하고 그래”

70년대만 해도 은산리 주민 수는 80여명 가까이 됐다. 마을회관에는 아직도 지난 1974년 마을회관 준공식 때 찍은 주민들의 사진이 걸려 있는데, 북적북적하던 마을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70년대 중반을 지나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마을 풍경이 달라졌다. 농사 이외에는 짚 가마니를 짜 시장에 내다 팔던 정도가 농외 소득자원이었던 때라, 젊은 사람들이 하나 둘 도시로 떠나기 시작하자 주민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마을 주민이 줄어들기 전에는 이장의 할 일도 많았단다. 지난 1981년 처음 이장을 했다는 최이장은 그때 당시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은 참 편해졌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소득조사를 한 번 하면 이장이 일일이 조사하러 다녀야 했고, 컴퓨터 보급이 안 돼 자필로 기록해야 했기에 4~5일은 잠을 못잘 정도였단다. 또 마을 사업을 할 때면 인건비와 예산을 맞추느라 고생했는데 지금은 면사무소에서 직접 관리하니 훨씬 수월한 편이란다.

주민들, 가족처럼 지내며 상부상조
농사지을 주민 줄어들어 걱정

은산리의 주 생업은 농업인데, 최근 농사가 힘에 부치는 주민들이 부쩍 늘었다. 가장 고령인 92세 윤평심 할머니부터 80대 3명, 70대 5명으로 22명 중 65세 이상이 13명인데다가 독거노인이 다섯 가구다.

새로 오는 주민들은 거의 없고 세월은 흐르다보니 나이 지긋한 노인들만 남아 농사짓기가 힘겨워진 상황이다. 농기계가 있는 주민들이 도와드리고 있지만, 다른 주민들도 농사지을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외부에서 인부를 구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단다.

그래서인지 최이장의 걱정거리는 농산물가격이다. 농사짓는 건 갈수록 힘이 드는데 가격이 좋지 않아서다. 특히 은산리의 주 작물은 마늘, 양파, 고추이기 때문에 걱정이 크다. 농사짓기 전 했던 계약들도 다시 가격조정을 하고 있을 정도이니 한숨이 나온단다. 그래도 주민들끼리 상부상조하며 사니까 그나마 마을에 사람사는 분위기가 난다고.

최이장이 이장을 다시 맡게 된 지 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장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명을 갖고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기술이 발달해서 주민들하고 화합만 잘 되면 남부럽지 않게 이장 할 것 같아. 면사무소 일이나 마을 사업들도 주민들이 협조 잘 해주니까 화합이 최선이지. 주민들이 호응 잘 해주는 것도 덕이야. 이장이 하는 말 들어주지 않으면 이장 하고 싶어도 못해”

주민수가 적다보니 마을사업 하기가 힘든 게 아쉽지만 주민들과 의견을 맞춰 오순도순 지내는 게 행복이란다. 최이장이 ‘근면성실한 우리 이장’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은산리만의 끈끈한 유대감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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