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은 바보처럼 살아야 해. 주민들 위해 하는 일이니 내가 잘나서 이장 한다는 것보단 주민들 의견 잘 듣고 행동하는 바보라고 생각해야지” 해남읍 해리 마을일을 14년간이나 꾸준히 맡아온 정기행(72)이장의 철학이다.

정이장이 이런 철학을 가지게 된 것은 행정리상 읍내에서 가장 주민수가 많은 해리의 특성 때문이다. 가구수 약 1600호, 47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어 어지간한 면단위보다도 사람이 많은 편이다. 그렇다보니 다양한 주민들의 의견과 요구사항을 절충하고자 스스로를 낮추게 된단다.

해리는 단독주택뿐만 아니라 아파트 8곳이 포함돼 있어 마을을 자주 돌고 노인정 등을 꾸준히 방문해도 모든 주민들을 만날 수는 없는 상황. 다른 주민들의 도움 없이는 이장일을 해나가기 힘든 여건이다.

이 때문에 정이장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주민들과의 소통이다. 현재 반장 12명과 아파트 주민대표 등 마을 임원들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마을을 꾸려가고 있다. 덕분에 지난 2004년 마을행정활성화평가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수많은 주민들의 의견을 정리하고 마을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대동계를 꾸려 운영 중이다. 읍 체육대회가 있을 때면 수많은 주민들 중 참가자를 선발하고 경기 연습을 시키느라 정신없이 바쁘단다. 청년회에서 2년에 한 번씩 노인위안잔치를 열어 주민들이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고 있다.

정이장은 14년 동안이나 이장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은 ‘평소에 잘하자’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한다. “평소에 주민들에게 잘 못하다가 이장 뽑을 때쯤 반짝 잘하면 아무 소용없어. 평소에 주민들 잘 만나고 이야기도 듣고 그래야지. 선거철에 국회의원들 시장 잠깐 돌고 악수하고 그러는 거 보면 욕하잖아. 이장도 마찬가지야”

마을 살림에 대한 애정도 남달라 가족의 일처럼 살뜰하게 꾸려나간다. 산이면에서 태어나 이사를 다니다 아내와 함께 해리에 정착한 때가 지난 1979년. 해리에서 보낸 세월이 가장 많아 이곳이 고향 같기 때문이란다.

“10년 전만 해도 지신밟기를 해서 마을 자금을 조금씩 모을 수 있었는데 참여하는 사람이 줄어서 더 이상은 못하게 됐어. 갖고 있는 마을 자금도 줄어들고 있으니 허투루 쓸 수 없지”

체육대회가 있을 때면 주민 수가 많다보니 선수들 운동복이며 연습 시 식사 제공을 하는 데에 드는 비용만도 수백만원. 마을 자금을 아끼기 위해 찬조금을 부탁하러 다닐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체육대회에서 우승을 하거나 주민들이 이장으로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도 열심히 일 할 마음이 든단다.

주민 수 많다보니 소통이 가장 중요
금강골 찾는 군민 늘어 뿌듯해

그런 정이장의 자랑거리는 금강골이다. 데크로드와 운동기구를 설치하는 등 14년동안 꾸준히 금강골 정비를 해왔기 때문이다. 노인들도 금강골을 자주 찾자 조금 더 안전한 금강골을 만들기 위해 징검다리 옆에 다리까지 설치했다.

“내가 조금 더 젊었을 때는 등산이나 동네 개울가로 마실나오는 것도 사치라고 그랬지. 근데 지금은 다들 건강 신경 쓰고, 등산은 건강한 취미가 됐어. 덕분에 금강골도 아침저녁으로 사람이 많이 와. 걷기 좋지, 공기 좋지. 해남에 금강골이 있는 건 축복이야”

해가 갈수록 금강골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낀단다. 현재는 금강저수지 둑 정비 국가사업도 신청해놓은 상태다.

정이장은 앞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로 주민들과의 화합을 꼽았다. 주민들의 생활이 개인화되고 마을 전통 제사 등이 사라지면서 체육대회를 제외하고 나면 주민들이 다함께 참여할 수 있는 일이 없어져 안타까운 생각에서다.

아파트 주민들과 단독주택 주민들은 만날 일이 적은데다가, 가까이 사는 주민들끼리도 서로를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 요즘의 모습이다. 농촌도 마찬가지, 같은 마을사람끼리 서로 정을 느끼는 게 힘든 세상이란다.

“면을 이끈다는 생각으로 큰 책임감을 갖고 있어. 사람이 적든 많든 사람 사는 곳이면 서로 정도 주고 이해도 하려고 해야지. 찡그린 얼굴 보는 것보단 웃는 얼굴 보는 게 기분이 더 좋잖아? 마을이란 것도 그래야지. 사람이 웃을 수 있는 곳이 돼야 해”

정이장은 지난 2011년부터 노인복지회관이나 경로당 등에 마술봉사를 다닌다. 한 시간 동안 30여가지의 마술을 무료로 선보인단다.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 마술을 시작했다는 정이장. 주민들의 얼굴에 웃음꽃 피우는 마술사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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