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기 물초록 사랑
-해남 우항리 공룡박물관

그대여 살다가 힘들면
남도의 땅 끄트머리 해남 우항리牛項里로 오게나
거기에는 원시의 꿈, 신화의 어머니가 살고 있네
8500만 년 전 백악기 시절에
선명하고 정교한 용각류 공룡발자국
제일 오래된 물갈퀴새발자국
네 발자국으로 걷는 익룡,
그 400개가 넘는 발자국, 발자국, 발자국들
세계 유일의 풋풋한 생명들이 꿈틀거리는 곳이라네

공룡들은 화원반도 지축을 울리며 질러가고
익룡들은 느릅나무 집채만한 날개를 휘저으며 날고
물갈퀴새는 웅덩이에서 물낯바닥을 쪼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이좋게
노령줄기를 따라 거슬러 오를 때
달은 반도의 나라가 건설되는 개국의 꿈을 꾸고 있었지

5㎞의 꿈결 같은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걸어가면
검정색, 푸른색, 흰색 색종이 더미의 수평층리
익룡의 날갯짓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먼 웃대
소리가 들릴 듯한 절경의 해안 절벽
그래 티아노사우루스 스탄 초식공룡이 둥지에서
마악 낳은 희고 둥근 알을 들어올리고 있어
그 뜨끈하고 거대한 알, 그 알 가장자리엔
시조새 아르케옵테릭스의 울음소리 들려오는 듯하지

살다가 세상이 힘들게 하는 날
그대여 이곳으로 오게나 백악기의 싱싱한
물초록 사랑을 그대에게 담뿍 드리고 싶네

 

<시작메모>
세계 유일의 수식어가 가장 많이 붙은 곳 해남 우항리 고생물화석지! 그러니 인류나 문명의 시작도 여기부터가 아니겠는가. 마음이 힘들어 지칠 때 해안의 수평층리는 내게 평안과 생의 의지를 말없이 채워준다. 세상 틈새에서 힘든 그대를 초대한다. 

 

 
 
<이지엽시인 약력>
-해남군 마산면 출신
-1982년 한국문학 백만원고료 신인상과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어느 종착역에 대한 생각>과 시조집<사각형에 대하여>외 다수.
-중앙시조 대상, 유심 작품상 등 수상, <현대시 창작강의>외 저서 다수.
-계간 <열린시학>과 <시조시학>주간. 현재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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