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면 흑천리 이장을 7년째 맡고 있는 윤광석(74)이장. 윤이장은 45년동안 서울에서 지내다 지난 2007년 해남으로 내려온 귀촌인이다. 그렇다면 고향이 흑천리일까? 그것도 아니다. 윤이장의 고향은 강진. 귀촌하기 전 해남에 내려와 일하고 있던 아내를 따라 함께 정착하게 됐다.

“흑천리는 전현직 공직자가 20여명이에요. 우리 나이대에 대졸이 15명이나 되고, 판검사를 4명이나 배출한 마을이죠. 서울에서 오래 살았다보니 시골이 낯설었는데 이 마을이라면 잘 살아볼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노년기 새로운 인생을 살아볼 무대로 흑천리를 고른 윤이장은 흑천리를 고향만큼 사랑하기 위해 이곳을 자세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뉘 집에 젓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말이다.

윤이장은 귀촌·귀농인이 많지 않은 흑천리에서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 마을일이나 주민들 일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도시에서 온 외자사람이라는 경계심을 없애고 주민과 가까워지는 것이 흑천리를 알아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의 노력덕분에 주민들과의 사이도 양파껍질을 벗기듯 한 커풀씩 가까워졌다. 그러고 나니 흑천리가 옥천 43개 마을 중에서도 낙후된 지역임을 알게 됐다고. “우리 마을이 교육열도 높고 땅이 비옥한 것에 비해 마을 자체는 낙후된 편이었어요. 그래서 앞서가는 마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윤이장이 귀촌 후 이장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년. 지난 2008년 이장으로 선출된 뒤 지금까지 이장을 맡아오고 있다. 흑천리에 오래 살았던 것도 아니요, 고향 사람이 아닌데도 이장을 맡겨준 주민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단다.

군이나 농협에서 내려온 공문을 주민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재해석해 눈높이 안내를 시작했다. 이장의 역할이 주민들의 소득과 직결된다는 생각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면사무소를 하루 3~4번씩 방문했었다. 덕분에 윤이장 집의 달력은 각종 공문과 신청 안내로 빼곡하다.

농로와 마을안길 포장 사업도 신청해 주민들 이동이 편할 수 있도록 했고, 낡은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해 깔끔하게 재탄생 시켰다. 또 폐허처럼 버려진 마을땅에 지난 2010년 참살기좋은마을 사업을 신청해 쉼터를 만들고 공원을 조성했다. 이 사업으로 같은 해 이장콘테스트 1등을 차지해 민속잔치비용 100만원을 받았단다.

“뭐든지 사후관리가 중요해요. 꾸준히 관심을 갖고 유지해야지, 반짝 했다가 사라지는 일회성 사업은 주민들 보기에도 실속이 없으니까. 그래서 마을 공원 청소도 꾸준히 하고 있고, 최근에는 운동기구도 설치했어요. 조금씩 조금씩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시키려고요”

주민 신임 얻으려면 한결같은 봉사해야
이장이 행복하게 일해야 주민들도 행복해

어렵게 사는 주민들 생활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윤이장이 가장 신경썼던 것은 독거노인 복지다. 흑천리는 55호, 120여명이 살고 있는데 이중 40%가 65세 노인인구다. 젊은 사람이 많은 편이지만 몸이 편찮은 고령 노인이 많아 가장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특히 몸이 좋지 않아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식들이 외면해 어려운 생활을 하는 노인들도 있었단다. 자식이 있어 정부 지원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윤이장은 이를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후보증을 서가며 행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발로 뛰었다. 덕분에 자식보다 낫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한 편으로는 이런 농촌의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공동체 정신이 다시 살아나야 해요. 국가도 사회도 하나의 공동체고, 함께 살아간다는 공동체 정신이 있어야 슬프면 함께 슬퍼하고 기쁘면 함께 기뻐하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돌아볼 수 있게 되면 우리 사회의 폐단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지난해 모범이장 선진지 견학프로그램을 통해 3박 4일간 일본 농촌을 견학했는데, 소규모 협동조합들이 흑자를 내는 것을 보고 더욱 공동체 정신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그래도 흑천리에서는 정월대보름 당산제를 지내고 유두날 어르신들을 모시고 식사대접을 하는 등 주민들이 모이는 시간들이 있는 편이라는 게 윤이장의 설명이다. 또 이전에 비해 주민들이 마을 일에 더 협조해주고 있어 희망이 보인다며 웃는다.

잘 사는 마을이라는 거창한 목표보다 공동체 정신이 살아난 행복한 마을이 꿈이자 목표라는 윤이장. 공동체 정신을 살리기 위해 이장의 모습에서부터 공동체 정신을 나누고 실천하는 게 필요하다며 이장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단다.

“마을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이 필요하지만 가장 기본은 이장으로서의 행복이에요. 마을일을 돌보며 행복하지 않는데, 주민들에게 마을일에 관심 가져달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이장일이 즐겁고 행복해야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어요. 이장으로서 행복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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