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입구부터 반겨주는 아담한 꽃밭이 인상적인 송지 소죽리. ‘세월도 쉬어가는 곳’이라는 멋들어진 명패가 걸린 쉼터와 알뜰살뜰히도 꾸린 작은 화단이 평화로움을 느끼게 한다. 소죽리의 느긋한 시골정취는 ‘싸묵싸묵‘ 일한다는 노명심(58)이장의 손끝에서 나온다.

지난 2004년 처음 이장을 시작했다는 노이장. 3년간 마을에 봉사하고 다시 이장을 맡은 지 3년차로 총 6년 경력의 이장이다. 소죽리 안으로 들어가면 비탈진 고개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반듯반듯 쌓아올린 담벼락들을 쭉 가로지르는 마을 안길은 시멘트 포장으로 깔끔하게 정돈돼 있는데, 노이장이 여성이장 숙원사업으로 닦아놓은 길이다.

“마을에 상수도가 있는데, 길옆으로 물이 흘러내려가게끔 돼 있어서 길이 참 좁았어요. 그러다보니 차나 경운기 사고도 나고 그랬죠. 지금은 복개해서 넓혔더니 사고 걱정이 없어요. 마을도 깨끗해지고 보기에도 좋더라구요”

지난 2004년도에 지은 마을 공동 저온창고도 노이장의 결실이다. 2000만원 사업비를 받아 12평가량의 저온창고를 지었는데, 주민들의 효자노릇을 하고 있단다. 전기세는 사용하는 주민들이 공동으로 부담하며 김치나 양파 등 다양한 농산물을 맘 놓고 보관할 수 있어 유용하게 쓰고 있다.

소죽리에는 마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우물이다. 송지에서도 물 좋기로 유명한 우물이었단다. 상수도가 들어온 이후로는 식수로 사용하지 않고 빨래하는 어르신들이 사용한다.

이런 공동우물도 일 년에 한 번, 물을 비우고 깨끗이 청소하는 날이 있다. 바로 음력 9월 9일 지내는 중구제를 준비할 때다. 노이장을 배려한 마을 어르신들이 새벽 일찍부터 풀베기를 해두고 ‘이장아 풀 다 비놨다~ 가봐라’ 하신단다.

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 됐다는 중구제는 마을 수호신인 중구할머니를 모시는 제사다. 뒷산 중구산에 제각이 있는데,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

“원래 마을 주민이 모셨었는데 그 분이 돌아가시면서 보경암 스님이 지내고 계세요. 음식이며 절차는 모두 그대로 지내지요. 중구제는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니어서 이장이나 부녀회장, 새마을지도자 등 몇 명만이 몸을 정갈히 하고 제를 모신답니다” 제를 올린 후에는 노인정에 남은 제사음식을 가져와 주민들이 함께 나눠 먹는다.

소죽리는 주민 60%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인구로, 그 중 70대 이상이 20여명을 넘는다. 부녀회에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관광을 가거나 경로잔치를 열고 있다. 18평 남짓한 노인정에도 매일 모여 같이 식사를 하신단다.

아쉬운 건 제대로 된 마을회관이 없는 점이란다. 새마을사업때 지어진 건물을 노인정이자 마을회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창고나 다름없던 곳을 리모델링해 방 하나를 만들어 사용중이다. 언젠가 제대로 된 마을회관을 짓고 싶다고.


마을은 예쁘게, 주민들은 화목하게

노이장에게 소죽리는 소박한 행복이 가득한 마을이다. 욕심없이 주민들 서로가 한 가족처럼 지내고 있어서다. 행정상 고개 너머를 두고 마을이 두 개로 나뉘어 있지만 다른 마을보다 더 화목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단다.

“이장은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이에요. 사람이 살아야 열심히 할 의욕이 나지요. 앞으로 농촌 경기가 살아나 젊은 사람들이 마을에 찾아오면 좋겠어요. 주민들을 위한 일들을 함께 시도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많으면 더 힘이 나지 않겠어요?”

소죽리 부녀회장은 노이장을 모범이장이라 부른다. 딸이 부모를 챙기는 것처럼 주민들 의견을 들어주고 묵묵히 봉사하는 야물찬 이장은 보기 힘들 거란다.

노이장이 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할 수 있었던 건 남편 이철수(59)씨의 응원덕분이다. 소죽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노이장과 이씨는 한 마을에서 결혼해 쭉 살아온 토박이 부부다. 총 55호, 100여명이 사는 작은 마을에서 결혼까지 했으니 모르는 주민이 없다.

‘부창부수’라는 말처럼 이씨 또한 마을 일에 적극 동참해 개인사업과 농사를 겸하는 바쁜 나날 속에서도 ‘우리 이장 잘 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단다.

마음처럼 되지 않아 아쉬울 때도 주민들이 믿어주고 따라줘 고맙고 든든하다는 노이장. 앞으로도 화목한 소죽리를 지켜나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미소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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