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우항리 박상용(57)이장은 마을의 저울추다. 마을 청년회에 고문으로 참여하는 가장 나이 많은 청년임과 동시에, 노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장년층이기 때문이다. 주민들 중심에서 소통하는 역할이다.

지난 2006년에도 이장을 2년 맡았다는 박이장. 그 당시 이장을 했을 땐 마을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 이장이라는 생각에 주민들을 돌아볼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49살 때 이장 했을 땐 젊은 혈기로 일하다보니 앞만 보고 달렸어요. 참살기좋은마을 사업도 신청해 전국 3등을 했을 정도로 열심히 했죠. 그런데 60살이 다 돼서 이장을 해보니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박이장은 사업에 더 열중하다보니 주민들 애경사도 다른 사람을 통해 건너 듣는 경우가 많았다. 마을회관에 노인들이 모여 있더라도 과자 몇 봉지 사서 간식 드리고 얼굴만 비추는 경우도 많았다고 털어놓는다. 세월이 흘러 다시 생각해보니 주민들을 신경쓰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려 다시 이장을 하게 됐단다. 지금은 예전의 죄송한 마음을 거름삼아 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열심이다. 회관에 잠깐이라도 안부를 여쭙고 이야기를 들어드린다고.

우항리는 60호, 120여명이 살고 있는데 이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70여명이 넘는다. 그렇다보니 노인들에게 가장 신경 쓸 수밖에 없고, 마을이 화목하기 위해서는 노인을 공경할 줄 아는 마을이 돼야 한다는 것이 박이장의 신념이다.

그의 주 관심사는 노인복지다. 건강이 좋지 않은 노인들도 많다보니 마을에 황토찜질목욕탕을 만들고 싶은 것이 가장 큰 목표다. 근처 남리에 목욕탕이 있지만 노인들 걸음으로 한 시간여를 걸어야 도착할 수 있어 안타깝단다.

“마을 주민들이 다 내 엄마같지요. 유모차 끌고 걸어다니시는 거 보면 마음이 아파요. 오며가며 태워다드리기도 하는데, 마을 안에서 찜질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라며 “자그마한 찜질공간을 만들어 남녀 하루씩 번갈아가며 찜질하실 수 있었으면 싶더라고요”

마을 청년들도 노인 공경에 열심히 참여해줘 든든하다. 박이장을 제외하고 청년회 회원들은 모두 12명. 이 중 농사짓는 청년은 단 두 명으로 회사를 다니느라 바쁜 와중에도 다달이 모임을 갖고 마을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회관이며 마을 주변 청소를 도맡아 한단다.

또 청년회가 마을 애경사나 향우들 일을 돕고 십시일반 모인 자금으로 정월 대보름 경로잔치를 크게 연다. 올해도 경로잔치를 열어 윷놀이, 투호 등 전통놀이 시간도 갖고 돼지 한 마리를 푸짐하게 준비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부녀회에서도 마을에 일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나서 힘을 보탠다. 폐비닐을 모아 만든 부녀회 자금으로 200만원 상당의 마을 앰프를 기증하기도 하고, 회관에 벽걸이 TV도 설치해 줬단다.

“우항리처럼 청년회나 부녀회 등 마을 조직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곳은 별로 없어요. 특히 청년회는 아예 없는 마을도 수두룩한 게 지금 농촌의 현실이잖아요. 주민들이 마을 일을 내 가족의 일처럼 생각해주니 이장 할 맛이 나지요”

노인복지 신경써야 마을이 편안해
젊은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마을일 나서

박이장은 밭농사 80마지기, 논농사 120마지기를 짓다 보니 농사철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마을 일이 먼저다. 농사는 사람을 불러 지을 수 있지만, 이장 일은 누군가 대신 해줄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구불구불한 마을길 때문에 경운기 사고가 잦아 농로포장 사업을 하기 위해 부단히 뛰어다닐 때에도, 여름철 비가 많이 오면 논 40ha가 물에 잠겨 배수로 사업을 신청하러 다닐 때에도 힘든 줄 모르고 돌아다녔던 건 박이장을 필요로 하는 주민들을 위해서다. 그가 열심히 뛰어다닌 덕분에 지난해와 올해 경운기 사고는 한 건도 없었고, 배수로 사업도 작업에 들어가게 됐단다.

박이장에게 이장이란 ‘대리인‘이다. 주민들이 이장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언제든지 갈 수 있어야하기 때문에 대리인이나 다름없단다. “요즘은 예전 같지 않아서 주민들이 다함께 모이는 경우가 적다보니 서로 오해가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러니 이장인 제가 젊은 사람들과도 교감하고 노인들과도 소통하면서 주민들이 다른 사람의 말에 더 경청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 싶지요”

그에게 우항리는 참으로 소박한 마을이다. 소소한 행복과 웃음만 있으면 즐거운 마을이기 때문이란다.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우항리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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