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산길을 넘어야 만날 수 있는 산골짜기 마을 송지 삼마리. 삼마리의 신호균(76)이장은 삼마리를 책임지는 일꾼으로 보낸 시간이 16년이나 됐다.

신이장은 지난 1970년대 한창 젊던 시절 처음 이장을 맡았다. 1년을 열심히 일하고 서울로 올라가 건축일을 한지 약 30년. 다시 고향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귀향한지 벌써 21년차 됐단다.

귀향 후 2년이 지난 1996년, 주민들의 권유로 또다시 이장을 맡게 됐다. 중간 중간 1~2년 쉬어가며 마을 일꾼으로 일하다보니 어느덧 16년이라는 시간을 이장이란 호칭과 함께 보냈다.

팔순을 바라보는 연세 지긋한 나이에도 이장을 놓지 못하는 건 신이장의 뒤를 이을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다. 삼마리는 23세대 41명이 사는 작은 마을인데, 65세 노인들이 대부분이어서 이장을 뽑기가 힘들단다.

“제일 젊은 사람? 8살 애기 하나 있제. 하하. 그라고는 40대가 두 명 있나? 나머지는 잰부 60대 이상이여. 젊은 사람이 밸로 없는디 먹고 살기 바쁘다한께 이장을 내가 하제. 젊은 사람들이 더 나서야 된디”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을 젊은층이 없다보니 청년회 운영도 안 되고 있다. 경로잔치를 준비할 젊은 사람들이 없어 잔치 대신 관광을 다닐 정도다. 처음 이장을 맡았던 때만 해도 80여명이 북적거리며 마을 일을 함게 해왔는데, 농촌 분위기가 이렇게까지 변할 줄은 몰랐단다.

수십년간 이어져 내려오던 정월대보름 헌식제 분위기도 바뀌었다. 다함께 마을을 돌며 군무를 치고 20~30상씩 헌식상을 차려내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헌식상 차리기도 힘에 부쳐 정월 초하루에 제사 지내는 걸로 바꿨단다.

“1970년대에는 마을 개발도 안됐었제. 말 그대로 기냥 산골이였응께. 지금은 훨씬 나서. 이장 함시로 안길 골목사업이라던가 마을 외곽 길도 다듬었응께” 신이장은 작은 마을이지만 주민들을 위해 알뜰살뜰 꾸려왔다. 그 중에서 가장 뿌듯했던 일은 마을 안길 사업을 해낸 거란다.

좁디 좁은 골목길이던 마을 안길을 넓히고 확장하기 위해 신이장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길을 넓히자고 사정했단다. 주민들 땅이 포함되기 때문에 허락을 받아야 했다. 신이장의 설득과 노력 덕분에 삼마리의 골목길은 쾌적해졌다.

지금은 포장공사를 한 지 오래돼 시멘트가 울퉁불퉁 떨어져나간 곳이 많아 보수하고 싶단다. “노인들이 많아진께 휠체어나 유모차같은걸 끌고 댕긴디, 길이 고르지 못한께 돌아다니기 힘들어 혀. 바퀴가 고장나기도 하고. 여서 할 일이 을마나 있겄어, 동네 쪼까 돌아다니고 밭에서 일 허는게 전부인디 길이 좋아야제”


노인들 많아져 마을 분위기도 변화
밭농사 편히 짓도록 물 끌어오고 싶어

신이장이 뿌듯해 하는 일은 또 있다. 멋들어지게 지은 마을회관이다. 지난 2003년에 신축한 마을회관은 아치형 기둥에 미니 테라스까지 갖춘 디자인이다. 건축 일을 했었던 신이장이 직접 설계했단다.

이 마을회관을 짓는 것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때 당시 군에서 지원해주는 돈은 2500만원. 하지만 건물을 지으려고 보니 5000만원이 넘는 돈이 필요했단다. 모자란 돈을 충당하기 위해 집집마다 5만원씩 돈을 걷었지만 턱없이 모자랐다.

결국 신이장은 객지로 떠난 향우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띄웠다. “사람은 적고 마을 사정은 애렵고. 이제 큰일 났구나 싶었제. 향우들한테 노인들이 조상을 지키며 마을을 영원히 간직해보고자 하니까 협조를 해주십사 했어”

주민들과 향우들의 십시일반 모금 덕분에 마을회관을 지을 수 있었다. 노인들이 마을 회관에 모여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볼 때면 늘 자랑스럽단다.

현재 삼마리 주민 대부분은 밭농사를 짓고 있다. 마늘, 단호박, 양파, 고추 등이 주 작물이다. 그런데 밭농사를 짓기 위해 물을 끌어와야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주민들이 직접 경운기로 물을 날라 농사를 짓고 있는 중이란다.

노인들이 많다 보니 물을 직접 길어오기 힘들어져 몇 년 전부터 마을 뒷산의 작은 저수지 물을 쓸 수 있도록 모터를 달아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문제는 삼마리에는 산업용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쉽게 설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이장은 이 문제를 이장으로서의 마지막 목표로 삼고 있단다.

신이장의 가장 큰 걱정은 삼마리뿐만 아니라 농촌 인구가 자꾸만 줄어드는 부분이다. 도시로 떠나는 시대의 흐름도 걱정이지만, 농산물 가격이 떨어지면 농촌으로 올 사람은 더욱 없을 거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다.

“석양에 떨어진 해 마냥 몸이 한 달 한 달이 달러. 힘이 없은께 이제 이장도 오래 못혀. 내 살림마냥 마을을 책임지고 발 벗고 나설 젊은 사람이 있어야 된디 그게 쉽게 되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하는 수밖에 읍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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