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림 솔바람소리

이지엽

서림(瑞林)은 우리 집 마당이나 한가지였지요. 창문은 바로 맞닿아 있고 대문에서도 열 걸음 남짓밖에 안되니 그럴 밖에요. 아름드리 팽나무 밑에는 늘 대나무로 바구니를 엮던 아저씨가 있고 돗자리 깔고 부채 하나 달랑 들고 눈 가물가물 졸고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두셋 있었지요. 우리들은 그 사이를 부산 나게 질러 다니며 공을 차기도 하고 땅따먹기 삼국지 놀이도 하고 공기 집기를 하며 흙먼지 폴폴 일으키기도 했지요. 엎어져서 코가 깨지기도 하고 엇박자로 넘어져 무릎이 쓸려 까지기도 했는데 몸 성할 날 거의 없었지요. 그릇장사 하러 가신 어머니 이제나 저제나 오시려나. 마산 장촌리 외갓집, 금자리 작은아버지 집, 연구리 이모집 그 바닷가 그리운 집들을 그리다 눈물 찔끔 흘리기도 하다 혼자 잠들었다 일어나면 단군전 뒤 솔바람소리……쏴아쏴아 쓸리는 밤바다 파도소리, 밤중 꿈속까지 끈덕지게 따라오던

오늘 40년도 더 넘어서 생생하게 들려오는 우우 그 솔바람소리
정정하게 붉은 노을의 눈매 아버지 아, 그 솔바람소리


<시작메모>
어머니가 해놓고 간 보리밥은 정확하게 5일이면 떨어졌다. 그러면 초등학교 5학년인 나는 밥을 해야 했다. 등겨에 풍로불로. 내가 하던 밥은 왜 그리 밥알이 부슬부슬 떨어져 내리고 깔깔하던지. 신 열무김치와 고추장이나 간장이 반찬의 전부였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서림 전체가 우리 집 마당이었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팽나무의 시원한 그늘과 단군전 뒤의 소나무 바람소리가 나를 키워온 셈이다. 보리밭과 황토밭과 솔바람소리는 내 문학의 영원한 자양분이 되었다. 
 

 
 
<이지엽시인 약력>
-해남군 마산면 출신
-1982년 한국문학 백만원고료 신인상과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어느 종착역에 대한 생각>과 시조집<사각형에 대하여>외 다수.
-중앙시조 대상, 유심 작품상 등 수상, <현대시 창작강의>외 저서 다수.
-계간 <열린시학>과 <시조시학>주간. 현재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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