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산면 향교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가 세워졌다는 설이 있다. 향교리에서 태어나 쭉 자리를 지켜온 김승조(71)이장의 큰 자랑거리다.

향교리는 나지막한 집들 사이로 푸릇푸릇한 대나무들이 쭉 이어진다. 넓게 트인 밭과 돌담에 어우러져 소박하면서도 화목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래서인지 김이장의 철학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 화목이다. “화목이 제일 중요하제. 주민끼리 화목하게 살고 단합이 잘 되는 마을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이장 했지”

현산면 이장들 중 가장 막내라는 김이장. 지난해부터 이장을 맡았기 때문인데, 실제 이장 경력은 10여년을 훌쩍 넘는다. 지난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이장을 맡았던 베테랑이란다. 세대수 32호, 75명의 주민들 생년월일부터 누구 땅인지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을 정도다.

마을 구석구석이 현대화되어갈 때 이장을 맡게 돼 상수도 공사며 마을안길 다지는 사업까지 모두 김이장의 손을 거쳤다. 밭 기반공사를 하기 위해 경기도까지 교육을 받으러 다녔었단다.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었지만 함께 잘 살자는 마음으로 이겨냈단다. 몇 번의 마을회의를 거치더라도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중재하며 마을 기반을 하나씩 쌓아 올렸다.

올해는 마을회관 앞 공간을 넓히고 싶단다. 여러 갈래 길이 모이는 곳인데다가 회관에서 행사를 할 때면 주차할 공간이 없어 불편한 상황이다. 마을에 변변찮은 운동기구도 없어 회관 마당을 넓혀 설치하고 싶은 것이 김이장의 마음이다.

“우리 향교리는 좋은 인맥을 띠고 태어났어. 사람이 좋아. 마을 방송할 때도 남을 헐뜯지 말고 미워하지 말라고 하고 있지. 내가 남을 존중하면 이게 다시 돌아오니까. 한 마디로 누워서 침 뱉으면 얼굴에 떨어지니 하지 말란 소리여. 하하”

향교리 주민은 80%이상이 65세 이상 노인들이다. 그렇다보니 마을 주 생업인 농사가 힘에 부치는 주민도 생기는데, 그럴 때면 다른 주민들이 자기 일을 놔두고 도와준단다. 김이장도 주민들 처지를 잘 알다보니 앞장서서 주민을 돕게 된다고.

김이장이 나서지 않더라도 주민들이 상부상조하며 우애가 돈독해 품앗이가 잘 되고 있단다. 마을 주민들의 우애가 돈독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이장으로써 가장 흐뭇할 때라고. 여자 노인당의 경우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밥을 해먹고 잠만 집에서 잘 정도로 가족처럼 지낸다.


주민들 서로 상부상조하는 삶
경로잔치 해온지도 40여년

향교리는 예부터 배움의 터전이었다. 고려시대 때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는 향교가 가장 큰 기틀이란다. 마을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 지난 1998년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까지 진행했었다며 자신감을 보인다.

또 지난 60년대까지 서당이 운영됐다. 농한기철이면 3개월 동안 서당을 운영해 주민들이 모여 공부를 했단다. 김이장도 어릴 때부터 서당에서 명심보감과 천자문을 배웠다. 명심보감을 읽으면 죄를 지을 수가 없다며 향교리 주민들의 선함은 배움에서 나왔단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아주머니들은 타지로 나간 고등학생들이 방학 때마다 야학을 열어 학문을 가르쳤다. 변변한 학교는 없었지만 칠판을 걸고 열성적으로 공부했다고. 일찍부터 학구열에 눈을 뜬 마을이었다.

예의범절과 어른공경을 중요시했던 향교리는 경로잔치의 역사도 오래됐다. 벌써 40년을 넘게 잔치를 열었는데, 학문을 배우면서 어른을 공경하고 이웃을 존중하는 인식이 트여있기 때문이라는 게 김이장의 설명이다.

한복을 갖춰 입고 젊은이들이 마을 어르신들에게 큰 절도 올리고, 다 함께 모여 시끌벅적하게 건강을 기원했었던 때가 있었단다. 지금은 젊은이들이 거의 없어 주민들끼리 식사를 하는 정도다.

정월 대보름이면 옆 마을과 시내를 사이에 두고 불싸움을 벌였던 기억도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라고 말하는 김이장의 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그래도 아직까지 향교리는 당산제를 지켜오고 있다. 정월 초 이틀에 지내는데, 당산나무가 태풍에 쓰러지고 고사하면서 회관에서 지내고 있다. 지역 무속인들을 불렀었으나 시간이 흘러 무속인의 맥이 끊기면서 광주에서까지 모셔왔었단다. 지금은 마을 부녀회에서 직접 담당한다고.

“주민 수는 많이 줄었는데 서울에서 귀농 온 사람도 있어. 도와주고 더불어 살면서 진짜 향교리 주민으로 탈바꿈시켜야지”라는 김이장. 선한 기운으로 가득 찬 마을이라는 그의 믿음은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는 주민들과의 화합에서 나오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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