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더 간절한 사람이 있어

이지엽

김연아는 역시 대한민국의 큰 딸이었다
완벽한 연기로 말끔하게 피겨스케이팅을 끝내고
금메달을 도둑맞았다고 다들 난리를 쳐도
오히려 우리를 위로 했다
더 간절한 사람이 가져갔을 거라고

사상 최악의 스캔들, 충격, 믿을 수 없다
너무 화가 난다는 외국 전문가들의 얘기와
편파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채점표마저도
일시에 훅 불어버린 의연한 한마디
더 간절한 사람이 가져갔을 거라는

우리는 안다
그녀가 얼마만한 고통 속에 있었는지를
인대와 힘줄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어도
너럭바위 같은 내면의 무게 짓눌러 와도
17년 동안 묵묵히 참고 견뎌온 것을
무대 뒤에서 남몰래 흘린 뜨거운 눈물의 의미를
신성한 이름을 돈과 권력의 차원으로 떨어뜨렸다고 해서
트리플 악셀과 유려한 선율, 그 예술의 눈물과 감동을
어찌 다 가릴 수 있겠는가

사랑해요 그리고 감사해요
온 국민이 그대에게 보내는 따뜻한 말
값진 보석 가진 것처럼 행복한 꿈을 꾼 시간
우리는 절대 잊을 수 없으리
그러니 그대 이제 내려놓으시라
발에 얹어놓은 그 무겁고 아픈 짐들
홀가분하고 기쁘게 맨발로 걸어가시라

 

<시작메모>
러시아 소치 올림픽을 마지막 무대에서 피겨스케이팅 여왕 김연아는 우리들 모두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은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그녀는 우리 모두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 주었다. 콰미 도스의 헌시처럼 “그녀가 견뎌야 했던 내면의 질투, 분노, 경외 그리고 두려움”을 다 내려놓고 이제는 그녀가 홀가분하고 평안하게 행복하길 바란다. 국민 모두가 그녀에게 전하는 말. 사랑해요, 그리고 감사해요.

 

 
 
<이지엽시인 약력>
-해남군 마산면 출신
-1982년 한국문학 백만원고료 신인상과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어느 종착역에 대한 생각>과 시조집<사각형에 대하여>외 다수.
-중앙시조 대상, 유심 작품상 등 수상, <현대시 창작강의>외 저서 다수.
-계간 <열린시학>과 <시조시학>주간. 현재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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