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살 이상화가 우리에게 하는 말

이지엽

오늘 새벽 대한의 딸 이상화가 금메달을 땄다
러시아 소치 아들레드 아레나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
74초70 올림픽 신기록으로
온 국민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가슴 벅차게 흥분하였다.

90여 년 전 대한의 시인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속절없는 봄을 노래했다
마돈나를 부르며 부활의 동굴을 얘기했던
그가 침실을 버리고 들로 나섰다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는 국민은 눈이 벌게져 찾았지만
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적의 이상화는 남자고 오늘의 이상화는 여자지만
신기하게도 이 둘은 모두 스물다섯 살
꽃다운 나이다 얼음 속에서도 사랑할 나이다

그러나 스물다섯은 역사에 책임을 질 나이
이들은 우리에게 준엄하게 묻고 있다
오늘 우리게 들도 있고 봄도 오고 있지만
과연 살진 젖가슴과 부드러운 흙의
봄노래 여기 있는가 청보리 향내 살아 있는가
삼천리금수강산
밥상은 무사한가, 정말 무사한가


<시작메모>
상화가 보여준 오늘의 스케이트 날과 90여 년 전의 호밋날이 우리 무딘 가슴을 예리하게 긋고 간다. 우르과이라운드 인코스와 수입 농산물아웃코스로 우리 밥상 모두를 점령당한 화려한 삼천리 한반도…여린 가슴에 태극기 휘날리는 저 상화에게 우리 지금 몹시도 부끄럽다. 들을 빼앗겨 지금 정작 봄조차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지엽시인 약력>
-해남군 마산면 출신
-1982년 한국문학 백만원고료 신인상과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어느 종착역에 대한 생각>과 시조집<사각형에 대하여>외 다수.
-중앙시조 대상, 유심 작품상 등 수상, <현대시 창작강의>외 저서 다수.
-계간 <열린시학>과 <시조시학>주간. 현재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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