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헌 옷 재활용을 위해 설치된 헌옷수거함. 하지만 일부 헌옷수거함은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어느 업체에서 설치했는지, 어떤 식으로 관리가 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헌옷수거함도 있을 정도다.

해리 ㅅ아파트에서 약 10m정도 떨어진 전봇대 옆, 누가 언제 설치했는지 모를 헌옷수거함이 설치돼 있다. 헌옷수거함에는 업체 이름이나 연락처가 전혀 적혀 있지 않다. 주변으로는 온갖 쓰레기가 버려져 있어 쓰레기장을 방불케 한다. 조금 더 걸어가니 뚜껑이 열린 채 아무렇게나 방치된 또 다른 헌옷수거함이 보인다.

환경미화원에 따르면 이곳의 헌옷수거함들은 언제부터 설치돼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민원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군에서도 처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지 못해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평남리의 한 컨테이너 옆에 놓인 헌옷수거함은 컨테이너 주인의 간절한 부탁을 적은 메시지가 함께 놓여있다. ‘쓰레기 버리는 곳이 아니니 제발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달라’는 내용이다.

컨테이너 주인은 “헌옷수거함이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쓰레기 버리는 곳으로 착각해 컨테이너 옆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버린다”며 “누가 헌옷수거함을 설치했는지도 모르고 주변 관리도 전혀 하지 않아 일을 전부 내가 해야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처럼 헌옷수거함에는 관리자 번호나 업체 정보가 기재돼있지 않아 문제가 생길 시 어디로 연락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헌옷수거함 외형도 플라스틱 통부터 철제 구조물까지 다양해 미관을 해친다. 오래된 헌옷수거함은 낡고 칠이 벗겨져 흉물스럽기까지 할 정도다. 일부 양심불량 시민들이 버리고 간 생활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로 몸살까지 앓고 있다.


법적근거 없이 마구잡이 설치
군, 사유물 철거 어려워

헌옷수거함에 대해 구교리 모 주민은 “어차피 버리는 옷인데 누군가가 재활용 해 어려운 이웃에게 싸게 팔거나 수출하는 것도 지구를 위해 좋은 방안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주민은 “의류를 재활용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지만 관리가 되지 않아 주민에게 불편을 준다면 철거돼야 한다”고 말했다.

헌옷수거함은 자유업종으로 분류돼 법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수거하는 업체도 제각각이고 군에 신고 없이 설치만 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현황파악도 어렵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옷을 수거하는 업체보다 개인 소득창출자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업체가 많아 제대로 된 취지도 살리지 못하고 있다.

또 일부 주민들은 헌옷수거함에 옷뿐만 아니라 생활 쓰레기까지 버리고 있어 의식전환도 시급하다. 헌옷수거함 주변이 쓰레기장으로 전락하는 이유다.

한 의류수거업체는 “길에 설치하면 헌옷수거함 주변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쓰레기도 많이 들어 있다”며 “자물쇠를 뜯어내는 경우도 있어 이미 설치한 5개 수거함만 운영하고 길에 새로 설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골목길이나 도로에 설치된 헌옷수거함 수는 읍내에서 확인한 것만 18개. 계곡면에서 발견한 헌옷수거함도 읍내 헌옷수거함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군에서는 설치된 헌옷수거함이 몇 개인지조차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특별한 관련 법규가 정해져 있지 않아 무분별하게 설치되기 때문이다.

환경교통과 관계자는 “헌옷수거함은 군에서 설치하지 않고, 업체에서 설치하는 사유물이기 때문에 관리도 군에서 하지 않는다”며 “헌옷수거함에 관리자 번호를 기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어느 업체가 설치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군에 신고하지 않고 설치하기 때문에 설치 후 이동시키거나 철거해도 알아낼 방도가 없다”며 “정해진 담당 부서가 없다. 헌옷수거함 주변이 더럽다는 민원이면 미화계 소관이므로 해당 민원을 처리하고, 철거 민원은 각 읍면사무소로 연락한다”고 말했다.

읍면사무소 관계자는 “헌옷수거함은 옷이나 이불 등 천 제품이 들어 있어 비가 올 경우 물에 젖어 썩게 된다. 이 때문에 더럽고 냄새난다는 민원이 들어오는 편이다”고 말했다.

또 “관리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자리만 차지하는 헌옷수거함도 있다. 하지만 수거함은 사유재산이고 관련 법규나 조례가 없어 함부로 철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각 마을 이장이 민원을 넣으면 이장과 함께 방문해 철거한 후 보관하거나 폐기한다”고 말했다.

 
헌옷수거함을 설치한 업체가 사라지거나 업체 주인이 바뀌면 더 이상 헌옷을 수거하지 않는데도 수거함만 남아있는 경우가 발생한다. 읍내 아파트와 빌라를 돌아다녀본 결과 대부분의 아파트에도 헌옷수거함이 설치돼 있었다. 그 중 ㄱ아파트에 설치된 헌옷수거함은 뚜껑이 파손돼 내용물이 훤히 보일정도지만 관리가 안 돼 쓰레기가 쌓여가고 있다.

ㄱ아파트 경비는 “누가 수거하는지도 모르겠고, 헌옷이 쌓이면 먼저 주워가는 사람이 임자일 정도로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거함에 해남군 한국자원재생공사해남관리소 라는 업체 명칭이 확인돼 자원재생공사에 연락을 취했다.

그런데 답변이 황당하다. “현재 해남관리소는 사라진 상태이며 호남지역본부가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업체는 사라졌지만 헌옷수거함은 철거되지 않아 주민들이 이제까지 불편을 겪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ㄷ아파트에 놓인 헌옷수거함에는 한 봉사센터의 이름이 적혀 있다. 연락을 해보자 “예전에 20개 정도 헌옷수거함을 설치했었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 헌옷수거가 잘 되지 않았고 현재는 운영하지 않는다”며 “운영을 그만두면서 헌옷수거함을 철거했는데 누락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헌옷수거함 관리로 문제가 많아지자 아예 철거해버린 곳도 있었다. 수성리의 한 아파트 관계자는 “우리 아파트에서는 몇 년 전부터 헌옷수거함을 없앴다. 헌옷만 버려지는 게 아니라 온갖 쓰레기가 함께 버려져 각 가정에서 해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업체와 계약해 공동기금으로 사용하는 아파트도 있어

아파트 입주민 수가 많은 곳은 의류수거 업체와 연 단위로 계약해 일정 수수료를 받고 판매한 뒤 아파트 경비로 사용하고 있었다.

ㅈ아파트 경비는 “주민들이 내놓은 헌 옷도 아파트의 재산이다”며 “주민들이 내놓은 옷을 재활용도 하고, 판매 수익금을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사용하니 1석2조다”고 말했다. 업체와 계약하기 때문에 정확한 설치업체를 알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적다.

하지만 모든 아파트에서 업체와 계약하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에 놓인 헌옷수거함을 군청에서 설치한 줄 알고 있는 곳이나, 누가 설치했는지 모르는 채 아파트 경비가 관리하는 곳도 있었다.

ㅁ아파트 경비는 “헌옷수거함이 일반 플라스틱통으로 되어 있어 바람이 강하면 뚜껑이 날아간다. 다시 주워와 덮어놓는 것이 반복되는데 누가 설치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재활용 취지 살리려면 책임·관리 뒤따라야

헌옷수거함에 대한 문제점이 많아지자 타 지역에서는 법적 근거 없이 도로변에 헌옷 수거함을 설치하는 것은 불법점유로 판단해 철거하고 있다. 울산의 경우 연락처가 없고 관리가 되지 않는 헌옷수거함을 강제철거했다. 고양시․수원시의 일부 구에서는 관리번호를 부착했고, 창원시 명곡동은 실명제로 운영하는 등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또 재활용 사업을 마을기업이나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해남에서도 사회적기업 초록가게에서 헌옷수거함 15개를 설치했으며, 재활용사업을 통해 수익금을 사회에 환원하는 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초록가게 관계자는 “헌옷을 기증받거나 수거해 사용할 수 있는 물품을 분리하고, 깨끗하게 처리해 판매하고 있다”며 “수익금으로 토요일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어려운 가정의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록가게에서 설치한 헌옷수거함들은 초록가게의 이름이나 번호가 적혀져 있어 문제가 생길 시 책임소재가 명확하다. 초록가게 관계자는 “지역을 위해서 만들어진 사회적기업이기에 헌옷수거함으로 주민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수거일마다 주변 미화를 함께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헌옷수거함은 분명 긍정적인 부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설치되고,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현행법규나 조례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황, 헌옷수거함에 대한 관리방안 제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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