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길 위에 소망을 새겼습니다

2013년이 저물어 가던 12월 30일 새벽 5시 반 아내랑 큰딸이랑 해남읍 집을 나섰습니다. 자동차로 40분 만에 당도한 땅끝마을엔 보길도로 떠나려는 사람들이 배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땅끝에서 해남읍까지 자동차로는 1000번도 넘게 다녔던 길, 4년 전 아들 딸이랑 함께 걸었던 그 길을 오늘은 혼자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6시30분 땅끝표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서 아내를 집으로 돌려보낸 후 첫발을 내 딛었습니다.

걷는 길이 북풍과 마주선 쪽이라 추위와 싸움이 걱정 됐지만 다행히 바람이 세지 않고 날씨도 춥지 않아 겨울 도보순례엔 최적 조건이었습니다. 땅끝에서 송호리해변까지 걷는 동안 벌써 등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고, 향긋한 아침 바람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습니다.

땅끝에서 6km 거리인 송지면 대죽리 조개잡이체험장 근처 한 절임배추 가공농가에서 처음 쉬었습니다. 대게 1시간에 4km를 걷는다 계산해 적절하게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생각보단 시간이 지체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알아 본 주민들과 인사 나누다 보니 걸음이 늦어지는 거예요. 자동차로 지나치다가 후진해서 다가오는 분들, 당초엔 송지와 현산사이 금강마을에서 점심을 먹으려 했는데 그보다 한참 못 미쳐 아내가 싸온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이대로 포기해야 할까 고민에 빠졌습니다
현산면 고담마을 4차선 도로 앞에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2차선을 걸으며 화산면 소재지를 거쳐 가련 했는데 시간상 도저히 불가능 하겠다 싶어졌습니다. 하는 수 없이 4차선 도로로 올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4차선 도로 갓길과 가드레인 사이로 걷는데 무지 힘들었습니다. 배수를 위해 경사지게 만든 시멘트길이라 다리가 저절로 절뚝거려 지는 것이었습니다. 시

속 100km 이상 내달리는 차들의 굉음은 저와의 대화를 자꾸만 괴롭혔습니다. 구시터널을 걸을 땐 고통이 더 컸습니다. 터널을 울리는 자동차 굉음이 너무 커 518m 거리를 귀 막고 걷다시피 했습니다.

구시터널을 지나 확 트인 내리막길로 접어드니 걱정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파열된 종아리근육이 아물지 않은데다 무릎관절염으로 물이 차 오른 상태에서 강행한 게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해남까지 12km 남겨 놓고서 중도하차해야 하나 생각하니 제 자신이 얄미웠습니다. “걷자! 걷는데 까지 걸어보는 거야!” 제 자신을 달래면서 한발 한발 내 딛었습니다. 삼산면 어성교부터 봉학마을까지 3km 구간은 온통 오르막길이지만 되려 쉽게 느껴졌습니다. 제 자신과의 싸움으로 끓어 오른 오기 덕이었습니다.

오후 5시 20분에 삼산면 봉학마을 넘어서니 해남읍이 저 멀리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은 거리 6km는 그리 멀지 않지만 문제는 저문 날이었습니다. 불을 켜고서 내달리는 자동차들이 공포감을 일으켰습니다. 다리는 쉬어 가자지만 어디서 다리를 풀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어둠이 깔린 오후 6시 20분 드디어 아내가 기다리는 농업기술센터 입구에 당도했습니다.

“더 몸 낮추어 보고, 더 낮은 쪽으로 귀 기울이게”
저는 어려운 숙제에 직면할 때마다 땅끝을 찾습니다. 4년 전 두번째 낸 사회펑론집 제목이 '땅끝에서 봉화를 올리다'입니다. 봉화대는 위기를 알리는 돌탑입니다. 우리 사회 마지막 보루인 지역과 농어촌이 무너지는 참담한 현실 앞에서 외치는 저의 "긴급동의!"가 땅끝봉화 닮었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작년 여름 제가 김두관 친구의 대통령 출마선언식을 기획할 때 컨셉도 땅끝봉화 였습니다. 이번 도보순례는 제게 특별한 의미가 걸려져 있었기에 무리한 몸을 이끌고 강행했습니다. 올 지방선거를 앞두고 해남자치공동체를 복원할 절박함을 재확인 해보고 싶었습니다. 뜻을 같이한 몇 분들이 함께 걷자했지만 혼자 걷겠다 고집했습니다. 보여주기식 정치적 쇼로 치부되는 게 싫어서였습니다.

걷는 중 길 위에서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더 몸을 낮추어 보고, 더 낮은 쪽으로 귀 기울이란 말씀들이 가슴에 꽂혔습니다. 한 70대 어르신은 댁에서 드시던 사탕과 건강음료를 이쁘게 싸 오셔서 제 호주머니에 넣어주셨습니다. 깊은 포옹을 해 주셨고, 제가 마을 어귀를 돌아 설 때까지 하트표시를 해 주셨습니다. 다리 절뚝일 때마다 페북, 카스, 밴드의 300 여 벗님들이 주신 응원글을 보며 힘을 얻었습니다.

다음엔 명량대첩 도보순례를 도전하겠습니다
'땅끝봉화 순례'의 다음으론 울돌목에서 해남읍까지 걷는 '명량대첩 순례'를 마음 먹었습니다. 순례 중 해남출신 임두만 페친께서 주신 아이템이 딱이었습니다.

백척간두의 조선운명 앞에서 모든 걸 걸어야 했던 이순신 장군의 고뇌를, 민관협치로 기적을 일군 그 함성을 품어오고 싶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화원반도 땅끝에서, 산이반도 땅끝에서, 북평 남성마을에서, 계곡 선진마을에서 고장순례의 발길을 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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