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호박이 주렁주렁 열리는 송지면 동현리에는 듬직한 젊은이장, 박금령(57)이장이 있다.

박이장은 이장을 맡은 지 올해로 2년 차 초보이장이지만 마을을 위해 나서는 모습은 여느 이장만큼 노련해 보인다. 동현리에서 태어나 마을반장, 청년회 등의 활동을 통해 세대수 65호, 170여명 주민들의 내부를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호바다를 끼고 평화로이 자리 잡은 동현리는 담장 곳곳에 벽화가 그려진 풍경이 눈에 띈다. 2011년 벽화봉사단체에서 한 번, 그 이후 다시 벽화작업을 해 마을 내부를 산뜻하게 단장했다.

마을에 유일한 슈퍼는 과자집으로 꾸며지고 무지개 색 얼룩말, 샛노란 해바라기, 재치 있는 스파이더맨 등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마을 주민들이 너나할 것 없이 자신들의 집 담장에 그려달라고 할 정도로 주민들 호응도 좋았단다.

벽화는 박이장의 꿈이기도 하다. 동현리는 주로 마늘, 늙은호박, 김양식을 하고 낙지 철에는 할머니들이 낙지도 잡는데 박이장은 이런 동현리의 모습도 벽화로 남기고 싶단다. “타지사람들이 오면 우리 마을이 무슨 마을인지 모르는 채 지나가지요. 하지만 도로 주변 건물에 벽화로 우리 할머니들이 낙지 잡는 모습이나 마늘 캐는 모습, 늙은호박과 김발들을 그리면 금방 알 수 있지 않것소?”

박이장은 벽화마을 사업을 해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매력적인 마을을 꿈꾸고 있다. 방문객이 벽화도 구경하고 동현리의 농수산물도 사갈 수 있는 판매시설을 만들어 직거래를 유도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벽화용 페인트는 일반 페인트보다 비싼데다 오래 걸리는 벽화작업에 대한 비용을 마을 재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놓는다.

동현리의 특별한 풍경은 또 있다. 바로 당제(천제)와 헌식(獻食)제다. 매년 정월 초하루에는 제주 두 명이 생쌀과 생나물을 들고 하당에 올라 음식을 마련한다. 초이튿날 자정을 전후해 천제당이라고 불리는 상당에 당제를 지내고 마을 주민들은 가정의 무탈과 풍요를 기원한다.
정월대보름에 열리는 헌식제는 귀신 등 잡신의 한을 풀어주고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비는 의식으로 200여년이나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 부산의 문화단체와 자매결연을 맺고 회원 50여명이 ‘보름에 헌식밥을 먹으면 어지럼증이 없다’는 유래에 따라 밥상순례를 온단다.

헌식상은 각 가정에서 음식을 내와 바닷가에 늘어놓는다. 오후 4시가 되면 상당에 인사굿을 친 군고패가 요란스레 등장하며 헌식제를 지낸다. 이후 마을 주민과 헌식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음식을 나눠 먹으며 즐겁게 놀며 보낸다. 2~3년에 한 번씩 지신밟기도 한단다.

동현리의 마을 풍속은 유래가 깊고 주민들이 잘 보전해 지난 2008년 마을굿 살리기 프로젝트가 진행됐으며 올해는 군의 마을 전통민속잔치 보전․전승 사업에 선정됐을 정도다.

박이장에게 동현리는 어디에 내놔도 자부심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을이다. 올해 10월에는 최불암이 진행하는 ‘한국인의 밥상’ 143화에 등장했고 2011년에는 광주MBC의 ‘마을이야기 올망졸망’을 촬영했을 정도로 알려질 정도다.

자부심이 있는 만큼 마을을 생각하는 마음가짐도 크다. 이장이 되고나니 더욱 그렇단다. 박이장은 “이장을 해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할 일이 참 많아요. 이장을 하지 않았을 땐 무심히 지나쳤던 바닷가 슬레이트 조각도 이장 하다 보니 주민들을 위해 치우게 됩디다. 하하”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어떤 일을 해야 주민들이 편리할지 고민하다 보니, 주민들 택시기사노릇을 자처할 정도로 마을일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단다.

박이장은 올해 노인들을 위해 보금자리 사업을 신청했다. “우리 동현리도 노인들이 많아요. 독거노인들도 많은데 이런 분들은 건강상에 문제가 생겨도 살피기가 어렵죠. 한동안 보이시지 않으면 ‘아들네나 딸네 갔는갑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가 그 이유다.

보금자리 사업은 마을 노인들이 노인당이나 마을회관에서 숙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박이장은 “노인들이 힘든 것은 육체적인 부분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외롭고 고독한 것도 있지요”라며 여럿이 모여 지내면 노인들 생활도 한결 즐거워질 거란다. 특히 파도가 거세질 때면 바닷가 근처의 노인들은 집에 있을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에 동현리에 꼭 필요한 사업이었다고.

올해 이장 임기가 끝난다는 박이장은 “이장 연임은 주민들이 결정하니까 나는 모르지라”고 말하지만, 탁 트인 만호바다처럼 시원시원한 박이장의 모습을 주민들도 분명 오래도록 보고 싶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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