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사적지정을 앞두고 있는 우수영성, 성벽의 전체길이 1827미터 중 현재 264미터의 성벽이 남아있다.

문내 우수영성 국가사적 지정이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 8일 우수영성 사적지정을 위한 심의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문화재 위원들 일부가 현장 확인이 필요하다며 사적지정을 보류했다.
문화재 위원들은 오는 7월4일 우수영성을 방문, 현장 확인 후 7월 13일 사적지정 여부를 재 논의 한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남군은 지난 1992년 전남도 기념물 제 139호로 지정돼 있는 우수영성의 국가사적 지정을 위해 지난 2001년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많은 시간과 예산 등을 투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군은 지난 2013년 문화재청에 우수영성 사적지정을 신청했다. 문화재청은 해남군의 신청에 대해 계속해서 보완을 요구하며 심의회에 상정을 하지 않았다.
지난해 7월 문화재 위원들은 우수영성 현장을 방문했다. 당시 문화재 위원들은 사적지정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 등을 밝혀 8월 심의에서 사적으로 지정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또 변수가 생겼다. 우수영성과 함께 원문성도 함께 사적으로 지정돼야 한다는 의견에 문화재청은 보완을 요구했고 해남군은 서류를 만들에 문화재청에 제출했다.
또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난 4월 문화재청 직원들이 우수영성을 방문했다.
지난 6월 8일 사적신청 3년만에 처음으로 우수영성 사적지정을 위한 심위회가 개최됐다. 결과는 보류였다.
보류이유는 사적으로서 가치는 있다. 하지만 12명의 위원들중 4명이 현장을 몰라 방문 후 심의하자는 것이다.
한편 우수영성은 세종22년(1440년) 현재의 위치에 설치된 이후 고종 32년(1895년)에 폐영된다.
처음의 영역은 남북 길이 10리, 동서 너비 5리의 크기이며, 석축의 둘레는 3843척, 높이 11척, 연못 3개소가 있었다. 전라우수영지에 의하면 영내에는 민가 620호, 수군 병력 1085명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전라우도 연해지역 14관을 관할하였을 만큼 군사적인 규모와 역할이 매우 컸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수사 김억추는 통제사 이순신과 더불어 명량대첩을 거두었다.
해안선을 따라 가며 쌓은 전라우수영은 돌과 흙을 섞어 쌓은 혼합형으로, 사각형과 원형의 중간 형태를 띄고 있다. 성벽을 쌓은 아래쪽의 돌은 150㎝ 이상이 되는 큰 것들이나 올라가면서 30∼50㎝ 정도로 작아진다.
성벽의 전체길이는 1872미터, 현재 약 264미터의 성벽이 잔존해 있다.
우수영 성곽은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이 있었으나 현재는 성문은 없고 초석만 일부 잔존해 있고 우물 2기, 동헌, 객사터 등이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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