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라는 말만 들어도 사람들의 가슴은 먹먹해진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던가! 사람들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게 인지상정인가 보다. 바쁜 농사철이면 한국 사람들은 제일 먼저 고향 생각이 절로 든다고 한다. 고향의 어머니, 산새소리, 들꽃향기를 떠올리며 향수에 젖어 있을 무렵이면 산천에 지천으로 핀 찔레꽃 향기가 그윽하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해마다 6월이면 북녘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들은 고향 땅을 갈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이 미어져 내릴 만큼 아리다. 그 아픔은 평생 동안 지속되어 기약 없는 날만 하염없이 되풀이 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달포 전부터 온 산천 가득 지천으로 피었던 찔레의 하얀 꽃잎이 모두 흩날리고 나서야 전원속의 집들 담장 가득히 붉고 탐스런 찔레꽃이 피어났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이라는 노래가 흥얼거려지고 해마다 찔레꽃 피는 계절이면 사람들은 더욱 옛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가요속의 남쪽나라가 평안도와 함경도지역을 뜻한다고 하니 정말 의외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의 감시를 피해 만주와 시베리아 등지를 전전긍긍하며 살았던 북간도 유랑민들의 처연한 삶이 가요로 불러졌는데, 유랑민들은 해마다 6월이면 북간도에 불어오는 평안도의 찔레꽃 봄바람을 몹시도 그리워했다고 한다. 백난아가 불렀던 ‘찔레꽃’ 가요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6,25 전쟁이후 북녘 땅을 등지고 내려 온 피난민들에게도 고향은 언제나 함경도, 평안도 지역이었다. 전쟁 후 대한민국 재건을 위해 형성된 산업화 바람으로 농어촌 사람들이 도시로 이동하면서부터 한국인의 고향은 지금의 남쪽, 그러니까 서울 이남지역이 되어갔다.
6,25를 거치면서 가요에 등장하는 공간적 배경이 두만강, 대동강, 삼팔선 등 북녘 땅을 그리워하는 노래 가사였다면, 산업화 이후 가요에 등장하는 곡들은 남도 땅에서만 자생하는 동백꽃이나 섬마을 같은 서울 이남지역에 있는 것들이 소재가 된 것을 보면 우리네 고향의 변천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고로 한국인의 고향은 북녘 땅이나 남녘 땅 모두가 하나의 ‘남쪽나라’란 사실이다. 결국 한국전쟁은 하나뿐인 남쪽나라 내 고향을 두 개의 남쪽나라로 갈라놓았으니 우리는 모두가 고향을 잃고 유랑하는 실향민들이 아닌가 싶다.
식민지 시대와 전쟁을 통과해 온 우리민족의 기억 속에서 고향은 항상 가난과 서러움 눈물과 시련으로 가득했고, 그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도 찔레꽃은 언제나 한국인의 향수를 달래주는 대표적인 들꽃이 되었다.

별처럼 슬프고 달처럼 서러운 꽃, 찔레꽃
찔레의 종류가 좀찔레, 털찔레, 제주찔레, 국경찔레 등으로 나뉘는데 아쉽게도 우리주위의 붉은 찔레는 모두가 원예종이다. 평안도 지역의 연분홍빛 국경찔레를 제외한 한국 산야의 모든 찔레꽃은 사실 하얗다. 마치 우리네 민족성을 상징이나 하듯 하얗고 순수한 꽃이 바로 찔레꽃이다. 어느 가객의 노랫말처럼 하얗고 순박한 꽃, 별처럼 슬프고 달처럼 서러운 꽃, 나라를 위해 전장에서 쓰러져 간 전우를 보내며 밤새껏 목 놓아 울었을 어느님들의 넋을 닮아 찔레는 한국산야 지천에 피어 그 향기조차도 슬픈 꽃이다.
어디 찔레뿐이랴. 5~6월 초하의 들녘은 우리민족을 닮은 하얀 꽃, 들풀들로 가득하다. 이렇게 들꽃향기 나부끼는 고향들녘에 서있으면 평화를 외치며 산화한 숭고한 사람들의 손짓인양 삐비꽃 하얀 솜털이 바람결에 애처롭다. 그리고 넓은 들판 가득 ‘화해’라는 꽃말을 품고 선 한 무리의 망초 꽃들이 전쟁에서 쓰러져간 이름 모를 영령들께 헌화하듯 온누리 가득 피었다 진다. 우리의 산하 어디서나 하얀 들꽃들의 흐느낌이 가득한 호국의 달 6월은 그래서 더욱 슬프고도 애잔하다.

정지승: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 정지승님의 사진 속에는 우리의 문화유산 및 산하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가득하고 삶의 현장을 통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현재, 잡지와 신문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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