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우당 문은 여전히 꿈쩍도 않고 있는 모양이다. 고산 윤선도의 고택인 녹우당이 벌써 오래전부터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녹우당의 폐쇄는 해남군과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다. 고산 유적지 정비사업 당시에도 해남윤씨 종손측이 문을 닫는 등 녹우당 폐쇄조치는 벌써 여러 차례 되풀이 돼왔다.
여기에 고산의 원림이었던 금쇄동의 진입마저 굳게 막고 있다. 해남군은 금쇄동을 발굴한다는 계획으로 최근 지표조사를 마친 상태다. 이는 관내의 여타 문화재에 비해 엄청난 특혜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우당을 볼모로 한 종손측의 처사는 쉽게 납득이 가지를 않는다.

‘적선’과 ‘근검’을 강조한 고산

고산은 유배지인 함경도 삼수에서 장남 인미(仁美)에게 편지를 쓴다. ‘충헌공(忠憲公) 가훈’이다. 가훈은 ‘적선(積善)’과 ‘근검(勤儉)’을 강조하고 있다. 고산은 고조와 증조의 근면 절검으로 가문이 융성했음을 말하며 조부와 생부의 사치스런 생활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또 “나는 쉰이 넘어서야 명주옷이나 모시옷을 처음 입었는데, 시골에 있을 때 네가 명주옷을 입고 있어 몹시 불쾌했었다”고 적고 있다. 외거(外居) 노비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큰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자잘한 잡일이나 심부름은 집안의 노복을 시키고 외거 노비를 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에게도 여유를 주어 하는 일에 열중케 함으로써 사는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배려. 이것이 고산의 생각이었다.
고산의 가훈은 고조부인 어초은 윤효정과 무관하지 않다. 해남윤씨 족보 맨 앞에 녹우당의 개시조(開始祖)인 어초은을 ‘삼개옥문 적선지가(三開獄門 積善之家)’로 칭송하고 있다. 이는 생활이 어려워 나라에 세금을 내지 못하고 옥에 갇힌 사람을 어초은이 세 번이나 대납해 풀려나게 해주었다는 데서 생겨난 말이다. 녹우당에서는 이를 하나의 가훈처럼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명문가란 이런 것이다.
또한 고산은 충헌공 가훈을 통해 인미에게 이르기를 과거에 낙방하는 것 또한 근면하지 못한 소치로 하늘의 도움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늘의 도움은 적선을 하는 데에 있고. 수신(修身)과 근행(勤行)으로 적선하고 인자한 행실을 제일 급선무로 여기라 가르쳤다. 덕을 쌓은 집안은 자손에게 복이 남고. 악을 쌓은 집안은 재앙이 남는다는 것이었다. 따뜻하고 인정있는 바른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스스로의 교만을 경계하라는 가르침. 적선을 하고, 하지 않는 것에 따라 대가 끊기고 이어지는 것이 결정된다고 할 정도로 고산은 적선을 강조했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 했다.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다’라는 뜻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면 후손들에게까지 복이 미친다는 말이다. 이를 볼 때 녹우당의 오늘은 조상들이 쌓은 적선의 공덕이라 해도 가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근세사의 험한 세월을 거치면서 녹우당이 온전히 남을 수 있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구례 운조루의 경우도 ‘타인능해(他人能解)’, 즉 ‘누구든 열 수 있다’라는 글귀가 씌어진 뒤주로 선행을 베푼 덕에 험한 세월을 무사히 지날 수 있었다.

‘접빈객’은 종가의 자부심

녹우당의 폐쇄는 이러한 고산의 가르침을 무색케 한다. 요즘 금수저니, 흙수저니 해서 말들이 많지만 녹우당은 조상을 잘 둔 덕에 누리는 홍복(洪福)과도 같다. 다시 말해 금수저 과(科)로 분류할 수 있는데 ‘적선’과 ‘근검’을 강조한 녹우당의 가풍을 잊지 않았다면 혹시라도 조상에 누가 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매사에 삼가고 또 삼가야 하는 것이다. 아울러 종손으로서의 사회적인 책임도 잊어서는 안 된다. 종손으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해남군이 녹우당을 자랑스런 문화재로 내세우고 있는 것처럼 이에 걸 맞는 전통의 미풍양속을 대내외에 알릴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은 종가의 자부심이다. 조상에 대한 제사를 받들어 모시고.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을 차별하지 않고 극진히 대접하는 것이 사대부가의 전통 양속이었다. 이럴진대 해남군을 대표하는 종가인 녹우당이 문을 걸어 잠그고 이곳을 찾아 먼 길의 수고로움을 마다않는 손님들을 박절하게 대해서야 되겠는가. 물론 녹우당의 속사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녹우당은 종가의 사유재산이기 전에 해남군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 애써 녹우당을 찾아왔다가 문이 잠겨 발길을 되돌린다면. 그래서야 누가 녹우당을 해남의 명문가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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