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오련은 해남이 낳은 불세출의 수영선수다. 불모지였던 한국 수영계에 혜성같이 나타나 아시아 무대를 평정한 조오련을 사람들은 ‘아시아의 물개’라고 불렀다. 그럼에도 정작 고향인 해남군에서는 그를 추모하지 않고 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생가는 물론이고, 수영을 배우고 익혔던 금강골 어디에도 그의 흔적은 없다.

해남이 내세울만한 자랑스런 스포츠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하진 않았다.

지금처럼 조오련과 해남군이 불편해진 것은 ‘조오련배 땅끝바다수영대회’에서 유족들과 갈등을 겪으면서부터란 것이 정설이다.

지난 2013년 8월 제4회 바다수영대회가 끝나고 유족인 조오련의 차남은 SNS에 글을 올린다. 유족으로서 대회 운영주체로부터 느낀 서운함과 대회 운영상 드러난 미숙함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글을 올린 조오련의 차남은 “해남군이나 무슨 조오련배 조직위원회나 막말로 아버지 살아 계실 때 해준 게 뭐고…돌아가신 다음에 해준 게 뭐길래 아버지 이름으로 시합 만들어 놓고 망신 망신 개망신만 시켜 놓고…상소리 나오게 하나요”라며 격한 감정을 쏟아냈다.

이어 그는 그나마 있던 ‘조오련 수영장’은 물론이고 어떠한 경우에도 ‘조오련’이란 이름을 걸지 말라고 해남군을 비난하며 경고하고 나섰다.

이것이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아니면 해묵은 갈등이 곪아 터진 것인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사태가 험악해진 것은 그저 해프닝으로 치부할 만큼 간단치만은 않아 보인다.

금강골을 한국 수영의 성지로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바다수영대회를 통해 해남군과 유족간에 갈등이 수면위로 드러나기 전까지 해남군은 조오련에 대해 어떠한 예우를 한 적이 없다. 한 시대를 풍미한 걸출한 수영 영웅을 어쩌면 이렇게 홀대할 수 있을까, 의아할 정도였다.

시인 김남주와 고정희는 생가를 문화재급으로 관리하면서도 정작 세계무대에 국위를 선양한 조오련에 대해 해남군은 어떤 형태로든 공적을 기린 적이 없다.

순천시의 경우 손기정과 함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입상한 남승룡을 기려 ‘남승룡로’를 명명했지만 해남군은 그마저도 인색했다.

도로명이 새로운 주소로 정착한 현실을 감안할 때 단순히 마을 이름으로 도로명을 삼기 보다는 지역을 빛낸 인물들의 이름으로 명명하는 것은 대체적인 추세다. 그럼에도 해남군은 이런 면에서 턱없이 인색한 것이다.

관광자원 개발을 위해 활발히 논의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스토리텔링 기법의 도입이다. 관광상품을 개발해 여기에 이야기 옷을 입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오련이라는 훌륭한 자원을 생각할 수가 있다. 그가 수영을 익혔다는 금강골이다. 나는 이곳을 ‘한국 수영의 성지’로 조성할 것을 제안한다.

금강골에 벽화나 조형물을 설치하고 조오련이 수영선수로의 꿈을 키워가는 과정을 스토리로 엮어 전시하는 것이다.

아울러 금강골 입구나 조오련의 생가가 있는 해남읍 구교리 학동마을에 기념관을 건립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우슬경기장 내 수영장을 조오련 수영장으로 명명했지만 조오련의 명성에 걸맞게 국제규격의 매머드수영장 건립을 서둘러야 한다.

사업비는 물론 국비와 도비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국·도비의 요청은 조오련이기 때문에 명분은 충분하다.

고흥군 거금도에는 프로레슬러 김일기념체육관이 있다. 두말 할 것 없이 고향인 거금도에 마련한 김일의 흔적이다. 거금도라는 섬에 김일을 기리기 위해 상당한 규모의 체육관과 생가터에는 기념관을, 그리고 묘소와 공적비 등도 잘 정돈된 가히 김일 공원과도 같은 곳이었다.

이러한 김일의 경우에 비춰볼 때 조오련 기념사업을 추진함에도 별다른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오련이라는 이름을 붙인 도로명은 그가 말년을 보낸 계곡면 법곡리 일원이나 해남읍 연고지를 택해 정하면 해남 사람들이나 해남을 찾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것이란 생각이다.

조오련은 한국 수영의 역사다

이러한 조오련 관련 기념사업을 하려면 먼저 유족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조오련이 불의의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지 벌써 7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항상 불굴의 의지로 되풀이 된 도전 때문에 변변한 유산 하나 남기지 못하고 떠난 조오련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업적은 그 어떤 유산보다도 값진 것이다.

조오련은 한마디로 한국 수영의 역사다. 조오련이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혜성같이 나타나 수영 자유형 2관왕에 올랐을 무렵 그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책이 나올 정도로 ‘아시아의 물개’는 내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어디 그 뿐인가. 수영 부문 한국신기록 50회 수립을 비롯해 대한해협 횡단(1980), 영국 도버해협 횡단(1982), 2차 대한해협 횡단(2002), 한강 700리 종주(2003), 독도 횡단(2005), 독도 33바퀴 헤엄쳐 돌기 프로젝트 성공(2008) 등 그의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의 역사를 살펴봐도 그의 인생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해남군은 그를 기억하지 않고 있다. 혹시라도 유족이 올린 글에 부정적으로 반응한 결과라면 그 옹졸함이야말로 지탄받아 마땅할 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조오련은 한국 수영의 역사다. 아울러 해남군은 마땅히 그 역사를 기억하고 보전할 책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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