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에 출간된 ‘남자의 종말(The End of Men)’은 미국 시사 월간지 ‘애틀랜틱’의 수석 에디터 해나 로진이 쓴 책으로 ‘그리고 여성이 일어서고 있다(And the Rise of Women)’라는 부제가 붙었다. 로진은 이 책에서 여자에 대한 남자의 오랜 힘·역할의 우위가 끝났을 뿐 아니라 역전되고 있다고 얘기한다. 당연히 그 힘의 우위가 받쳐 준 전통적 남성성도 종말을 고하고 있고, 긴 세월 여성이 감내해야 했던 마초문화적 차별을 이젠 남성이 감수해야 하는 역차별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더불어 영원할 것 같았던 가부장제 사회가 가모장제 사회로 급속히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핵심 동인은 돈을 버는 능력, 곧 경제력의 역전이다.

2008년에 미국 노동계층 여성의 평균 수입은 남성보다 높았다. 2009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노동력 비중이 남성의 그것을 능가했다. ‘애틀랜틱’에 실었던 지은이의 연재 칼럼 ‘남자의 종말’이 뜬 것은 그 다음해인 2010년이었다. 현장취재와 인터뷰, 통계자료 등을 폭넓게 구사하면서 생동감 있는 필치로 담론의 설득력을 강화한 그의 칼럼은 이런 변화들과 맞물려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 마지막의 ‘골드 미스 분석’이라는 제목이 붙은 8장은 한국 현지 취재 내용으로만 묶었다. ‘된장녀’와 ‘고추장남’, ‘알파걸’, ‘오메가 메일’, ‘건어물녀’ 얘기를 하며 대학과 유한킴벌리 등을 찾아다니는 내용은 당연히 우리의 각별한 관심을 끈다. 최근 교육·외교·법조 분야 진출 여성들의 비중이 현저해지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남녀관계 및 이와 관련한 전통적 가치관들이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남녀 역할이 가장 빠르게 변하는 국가가 됐다. 교육 지상주의 사회에서 고학력 전문직 여성들이 늘었고, 젊은 여성들이 경제권을 갖자 가정과 사회도 변하기 시작했다. 여성 노동력은 지금보다 더욱 증가할 것이다. ‘몸과 인문학’을 쓴 국문학자 고미숙은 그 이유를 “남성은 서열과 위계에 민감하고, 여성은 공감과 유대에 민감하다. 전자는 잘 짜인 조직에 더 적합하고 후자는 유연한 네트워크에 더 잘 맞는다”고 분석했다.

여성이 가족의 생계 책임을 맡고 있는 '여성 가구주' 비율은 지난해 28.4%를 기록했다. 20년 전에는 16.6%였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오는 2030년에는 34.0%에 이를 전망이다. ‘남성의 종말’은 한국 사회에서 가사를 전담하는 남성이 15만6000명이나 되고, 여성이 대학 진학과 각종 고시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데도 대다수 한국 남성들은 아직 이런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꼬집는다.

세계적으로 3000만부가 팔린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보면 남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신만의 ‘동굴’에 들어가 TV를 보거나 운동을 한다고 한다. 남자는 동굴에 들어가야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여자가 남자에게 끌리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력’으로 꼽는다. 그러나 ‘남자의 종말’에서처럼 여자의 경제활동으로 이러한 화성인의 역할은 급속히 역전되고 있다. 어쩌면 이미 ‘가모장(家母長) 사회’는 시작됐고, 남자들은 동굴 속으로 속속 숨어들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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