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이 계간 ‘창작과비평’ 2016년 봄호에 단편소설 ‘만각스님’을 발표했다. 그가 단편을 발표하기는 역시 같은 책인 창작과비평 1988년 봄호에 단편 ‘열애’를 발표한 이후 28년만이다. 그동안 황석영은 ‘오래된 정원’ ‘손님’ 등 주로 장편 집필에 몰두해 왔다.

창작과비평 창간 50년을 맞아 쓴 이 소설은 5·18민주화운동 뒤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았다. 소설은 소설가 화자인 ‘나’가 10년 가까이 끌어온 연재소설의 마지막 장을 끝내고자 집필 장소를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1980년대 역사소설 ‘장길산’을 연재했던 황 씨의 문학적 이력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어서 흥미롭다.

황석영은 등단작인 ‘입석부근’을 포함해 ‘객지’, ‘삼포 가는 길’, ‘한씨연대기’ 등의 단편을 썼다.

‘만각 스님’은 대한항공 여객기가 격추된 1983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인 소설가 ‘나’는 연재소설을 마무리하기 위해 전남 담양의 호국사에 내려간다. ‘나’는 호국사에서 만난 만각 스님을 중심으로 한국전쟁과 광주 민주화 운동의 상흔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만각 스님’은 황석영의 자전적 성격이 강한 소설이다. 소설가 ‘나’는 1980년대 대하소설 ‘장길산’을 연재했던 작가를 연상시킨다. 또 황석영은 소설 곳곳에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과 남로당 총책 박헌영의 아들 원경 스님의 이야기를 중첩하며 논픽션 성격을 강화한다.

소설은 ‘나’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지만 이야기를 이끄는 실제 주인공은 만각 스님이다. ‘뒤늦게 깨닫는다(晩覺)’는 뜻의 법명을 지닌 스님은 사십이 넘어서 중이 된 특이한 인물이다. ‘나’는 소설 말미에 만각 스님이 한국전쟁 당시 공비토벌로 훈장을 받은 경찰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된다. 만각 스님이 죽은 빨치산과 민간인의 위령제를 지내는 장면은 개인과 사회의 회한을 이야기한 황석영의 장편소설 ‘해질 무렵’을 떠올리게 한다.

황석영은 다음과 같은 말로 소설을 마무리한다.

“나는 스님의 법명이 자기에게 꼭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 어디 그이뿐이랴. 사람살이란 언제나 뒤늦은 깨달음과 후회의 반복이 아니던가.”

황석영은 이 작품을 4일 만에 후다닥 썼다고 했다. 역시 단편이 예술이라며 옛날 문학청년으로 돌아간 것처럼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더란다. 장편처럼 책을 팔아야 한다는 부담 없이 수공예품 만들 듯 쓸 수 있어서였다.

황석영이 해남에서 ‘장길산’을 집필한 곳을 새롭게 발굴한 것과 맞물려서인지 그의 오랜만의 단편 소식이 더없이 반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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