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에 연재하고 있는 ‘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이 이번 소설가 황석영의 ‘장길산’ 집필실 조명으로 40회를 맞이했다. 20회에 연재했던 ‘해남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 마산 연구리’이후 개인적인 사정으로 6개월 가까이 재충전의 기간을 거쳐 다시 20회를 더하게 된 것이다.

내게는 오래 전부터 계획하고 있던 일이 있다. 천성이 여기저기로 다니길 좋아하는 관계로 기회가 되면 우리 땅을 인문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해보자는 것이었다. 90년대 이후 레저인구가 늘어나면서 ‘가볼만한 곳’이나 ‘맛있는 집’ 등 대중들의 기호를 충족시키고자하는 지면이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추세다.

필자 역시 기자초년병 시절인 80년대에 주말레저판을 맡아 90년대 초까지 약 3년 6개월간 연재한 적이 있다. 말하자면 레저문화를 이끈 초창기 역할을 했던 셈이다. 그러나 천성이 게으른 탓에 차일피일 미루다 한 시절 인연을 맺었던 해남을 기억하고, ‘다시 보는...’으로 재조명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우리 땅에 대한 인문학적인 접근

해남과 처음 인연을 맺은 이후로 어지간한 지역 주민들보다 더 많이 그야말로 구석구석을 찾아다녔다. 지금이야 낙조 전망대를 조성해 놓는 등 또 하나의 땅끝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화원 매월리 목포구 등대를 지면을 통해 처음 독자들에게 알렸고, 화산 관두산 용굴동과 큰댓골 해안을 역시 처음으로 지면에 소개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또 우리의 옛길인 두륜산 따밭재를 찾았다가 비를 만나 산속을 헤매다 투구봉으로 밧줄을 타고 쇄노재로 내려오기도 했다.

연재물의 제목을 보고 마을 탐방물로 생각하는 독자분들이 있다. 물론 크게 틀린 것은 아니지만 특정 마을을 소개하는 것이 아닌 여러 가지 역사성과 주변 환경을 고려해 고심 끝에 ‘팩트’를 선정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그러나 보편타당성을 고려해 개인적인 호불호를 배제하고 지역을 선정함에도 때로는 욕심만큼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아쉬움도 남는다.

같은 사물이라도 어떻게 바라다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일 때가 있다. 따라서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것들도 배경적인 스토리를 부여할 때 훌륭한 문화상품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던 마산 연구리 간척지가 그러한 경우다.

추수가 끝난 뒤 찾아간 연구리 간척지는 끝 간 데 없이 직선으로 뻗은 농로와 갈대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이곳에 서니 김제 만경평야가 생각났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소문 난 곳이다. 김제 망해사 전망대에 올라 바라보던 만경평야 ‘징게밍게 외야밋들’. 예전 바닷물이 넘실대던 연구리도 결코 이에 못지않은 풍경인 것이었다. 그

렇다면 이곳에 해남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스토리를 입혀보면 어떻겠는가. 지평선도 신기루와 같은 것이어서 나의 이러한 주장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아울러 아직 욕심만큼 미치지 못한 곳이 아름다운 해안선을 가진 해남의 포구다. 생활의 터전으로 여전히 제몫을 하는 포구가 있는가 하면 간척공사로 사라진 포구와 선창도 무수히 많다. 이를 기회가 닿는 대로 고증을 거쳐 복원해 보고 싶은 욕심이다.

첫사랑의 설렘을 안겨주는 해남

물론 연재를 하면서 부득이하게 주관적인 고집을 내세운 면도 없지가 않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당초 의도한 인문학적인 접근이라는 큰 틀에서 실체에 접근하도록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누구는 문화답사를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이는 자칫 지식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사물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식상한 감상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따라서 인문학적인 이해란, 역사성과 연관성 등 다양한 각도에서 실체에 가까운 이해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접근이 가능했던 것은 나름대로 각지를 여행하며 기억의 창고에 저장해 뒀던 유·무형의 자료들이 많은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개인적인 버릇이지만 사람들을 만날 때 그 사람의 고향을 물어본다. 대개의 경우 자신들의 고향에 대해 알은 체를 하면 마치 오랜 지기와 같은 친밀감을 보이는데 이는 적어도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의 출현이 반갑기 때문일 것이다.

연재의 횟수를 거듭하면서 만나는 해남은 늘 새롭기만 하다. 그야말로 해남은 내게 있어 가슴 설레는 첫사랑과 같은 곳이다. 지극히 우연한 기회에 인연을 맺은 곳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정해진 운명 같은 만남이었다. 그리고 이 연재가 언제까지 이어질는지 현재로서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해남 땅 구석구석을 찾아가는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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