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 다 된 걸로 기억이 난다. 탐사보도차 어느 군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자치시대 출범 이후 변화된 모습을 연재할 때여서 이것저것 자료를 수집할 겸 기자실을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군세가 그리 크지 않은 곳인데도 기자실에 주재하는 기자들이 대략 30명은 돼보였다.

언론사의 이름도 대부분 생소한 것이어서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저희들끼리 부르는 호칭도 대부분 ‘XX국장’으로 극심한 ‘직위 인플레’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연히 이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는데 마치 엄청난 비리를 적발한 것처럼 거친 속어를 써가며 공동기사로 대응해야 한다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아마 어느 기업체가 하수처리시설을 갖추지 않고 폐수를 무단으로 방류하는 것을 잡은 모양이었다. 당시에는 환경시설을 빌미로 한 ‘검은 거래’가 적잖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던 때였다. 그러니 이러한 대화를 듣는 순간 기자실이 복마전처럼 비쳐졌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균형감각 있는 기사의 생산이 아쉬워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곳의 군수는 기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일이 없기로 유명했다. 아예 혹시라도 모를 오해의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뜻이었다. 이들 함량미달의 기자들을 일일이 상대해봤자 제대로 된 군정을 펴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그럴 바에는 욕을 먹더라도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군수와 인터뷰를 하면서 얼마나 기자들에게 시달렸으면 그런 언론관을 갖게 됐을까,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지역 언론의 폐해는 대개가 해당 지자체에 대한 흠집 내기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지자체를 흠집 내서 언론권력으로서의 위상을 세우겠다는 다분한 의도 때문으로, 사사건건 부정적인 측면을 확대재생산하는데 열을 올리고 경향이 있다.

이런 까닭에 신문의 얼굴인 1면 머리기사가 매호마다 지자체에 대한 안 좋은 기사로 도배되다시피 한다. 그렇다보니 해당지역 주민들은 자칫 기관을 불신하게 되고. 향우들은 자신의 고향이 낯 뜨거운 일들로 잘못돼가고 있다는 생각에 불편한 마음이다. 어째서 나의 살던 그리운 고향이 이전투구의 아수라장이 돼 가느냐는 것이다.

지역 언론의 시각이 이처럼 부정적이면 지역 여론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더욱이 대부분의 비판적인 기사가 ‘팩트’에서 벗어나 선정적인 면을 부각시키거나 바람직한 대안 제시도 없는 일방적인 것이어서 ‘증권가 찌라시’ 수준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는 언론보도의 제일 덕목이 ‘균형감각’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한 외눈박이 시각으로 우호적인 일방만의 의견을 반영한 때문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상식에서 벗어나 불만을 부추기는 세력이 있다. 이들은 사사건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 다수가 찬성하는 정책도 이들에게는 별무소용이다.

초창기 상당수의 지역신문들은 공모주를 통해 창간됐다. 지배주주가 없는 공동체신문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기존 언론을 비판하며 지역공동체 건설을 위한 언로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촌지거부’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나친(?) 주인의식을 갖다보니 위계질서가 무너졌다. 촌지거부의 확대해석으로 취재원과의 원만한 관계는 물론 상대방이 취재를 거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한마디로 사회의 별종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지역의 내일을 함께 고민하는 자세로

의욕이 앞서면 뒤탈이 나는 법이다. 지역신문의 롤모델로 불리던 모 신문은 창간의 초심을 잃고 사유물로 전락했다. 이 신문뿐만 아니라 상당수 신문들이 그들이 비판했던 기존 언론의 벽을 넘지 못한 채 현실에 길들여진 모습이다. 이는 기자로서의 소양과도 관련이 있다.

우후죽순으로 언론매체가 생겨나면서 제대로 교육받은 기자는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대개가 급조된, 무늬만 기자인 셈이다. 이들을 지휘 감독하는 데스크도 마찬가지다. 이런 함량미달인 기자가 쓰는 기사가 여론을 대변할 수는 없다. 그러니 무리수를 두게 되고. 여론을 호도한다. 오죽하면 ‘기레기’라는 치욕적인 말까지 듣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물론 이는 빙산의 일각이고. 많은 기자들이 열악한 환경에도 나름대로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SNS의 급속한 확산으로 사회감시망은 상상을 초월할 크기로 확장됐다. 일반인의 비판적인 글이 어지간한 기사보다 파급효과가 큰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인간도처유상수’라는 말이 실감나는 세상이다. 이런 언론환경에서 지역 언론이 제 역할을 하려면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깨우쳐야 한다.

보이는 팩트만 갖고 기사를 쓰기 보다는 팩트 이면까지도 읽어낼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한 것이다. 상대의 단점만 보려들지 말고. 장점까지 아우를 수 있는 배려는 그래서 필요하다. 생각을 크게 하고 지역의 내일을 함께 고민한다는 자세로 임할 때 지역 언론의 가치는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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