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2016년 10대 소비트렌드 키워드의 선정 배경으로 장기화되고 있는 경기침체와 나날이 확대되고 있는 SNS의 영향을 우선 꼽았다. 여기에 계속되는 사건사고로 인한 사회적 트라우마가 낳은 전반적인 불안과 불신도 키워드에 반영되었다.

첫 번째로 선보인 ‘플랜 Z’소비는 위 세 가지 배경을 모두 담고 있는 키워드로 주목받는다. ‘플랜 Z’는 최선인 플랜 A, 차선인 플랜 B가 모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최후의 보루를 뜻하는 것으로 일명 ‘구명보트 전략’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풍요와 빈곤이 극적으로 교차되는 시대에 나타나는 플랜 Z 소비는 “통장 잔고가 0원일지라도 삶은 우아하게”를 모토로 삼는다.

이미 풍요의 시대를 경험한 이들은 현실이 녹록치 않더라도 개미처럼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식으로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현실은 개미이지만 베짱이의 DNA를 버릴 수 없는 이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한 푼이라도 절약해주는 ‘앱테크’의 도사로 거듭 나고 샘플세일과 리퍼브 제품의 마스터가 되는 방식으로 ‘우아한 서바이벌’을 이어간다.

플랜 Z의 시대의 또 다른 풍속인 ‘가성비’의 약진은 브랜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아예 브랜드 없는 브랜드인 ‘노브랜드’가 각광받는 시대에 사람들은 내용과 품질을 먼저 따지고 브랜드는 뒷전이 되어가고 있다. 소비자는 이미 브랜드의 후광이 아니더라도 객관적으로 품질은 판단할 정도로 정보에 민감하고 똑똑해져 있다. 대륙의 실수라고 놀림을 받던 샤오미의 무서운 약진은 바로 ‘브랜드보다 가성비’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아한 서바이벌을 도와주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SNS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바로 ‘있어 보이는 것.’ 주변의 너저분한 현실을 쏙 빼고 멋져 보이는 것들만 프레임에 담는 기술이야말로 ‘있어빌리티(있어 보이게 만드는 능력)’의 핵심이다. SNS에 뭔가를 올릴 때는 해시태그를 잊으면 안 된다. 오늘날 나와 취향이 맞는 사람들끼리 뭉치기에는 또 해시태그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21세기 취향공동체는 해시태그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SNS와 인터넷의 강력한 영향력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마을 공동체나 가족 공동체가 아니라 인터넷 공동체에 의지해 육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엄마들은 부모 세대의 조언보다 인터넷 선배들의 말을 더 따른다. 이미 ‘국민OO’ 리스트를 모두 외우고 있는 신세대 엄마들은 임신 전은 물론이고 태아 단계, 생후 1달, 2달, 3달 단계별로 아이의 양육상태와 육아정보를 인터넷으로 공유하며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육아법을 신뢰한다.

이들에게 아이를 키우는 것은 마치 고층건물의 한 층, 한 층을 쌓아 올리는 단계별 건축 공정과 비슷하다. 설계자 엄마에게서 자라는 아이들을 일컬어 ‘아키텍-키즈’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전혀 과하지 않은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인터넷의 영향력이 거대해지는 시대, TV가 바보상자의 오명을 벗고 가장 강력한 소통의 도구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현재 N스크린을 휩쓸고 있는 것은 공중파TV도 케이블TV도 아닌 개인이 제작해 송출하는 방송이다. 1인 미디어의 무서운 확장세는 기존 시청률 산정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게 만들었고 공중파 방송시스템의 체질 변화를 몰고 왔다.

과거, 오타쿠의 세상으로 폄하되던 1인 미디어는 이제 거대자본을 갖춘 MCN의 지원을 받으며 새로운 스타탄생의 진원지로 떠오르는 중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송국을 갖게 되는 시대. 새로운 콘텐츠 소비의 장이 열리면서 광고를 만들고 보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로 야기된 전반적인 불안감이 우리 사회를 엄습하고 있는 가운데 ‘과잉근심’이 도처에서 감지된다. 조그만 위험에도 극도로 몸을 사리는 사람들은 위험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제품과 서비스에 눈을 돌린다.

이와 같은 선상에서 에너지 위기와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도래한 100세 시대는 우리 모두에게 ‘지속가능한 삶의 양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16 트렌드코리아가 제시한 ‘미래형 자급자족’ 키워드는 지속적으로 잘 먹고 잘살기 위한 공동체적 해결법을 같이 찾아볼 것을 제안한다.

불안과 근심 속에서도 소비는 계속 되고 그것은 이 짜증나는 현실을 타파할 새로운 재밋거리의 추구와 연결된다. ‘원초적 본능’에 대한 몰두다. 이왕이면 재미있게, 좀 더 신선하게, 아니면 아주 다르게. 너무 잘 나가는 것들만 보는 것도 지겨워진 시대. 사람들은 이제 싼 티 나는 B급 정서를 더 반기고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들을 신선하게 바라본다. 키치적 재미에 눈뜬 브랜드들이 이 시장에서 앞서가고 있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트렌드 코리아 2016]는 이렇게 변하는 것들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에 주목한다. 즉,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욕망들이다. 인간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먹고 자고 입어야 하며, 나아가 권력과 명예와 성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과 ‘그 개성을 타인에게 과시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두드러지는 시대 현상을 가장 잘 드러내는 키워드로 ‘1인 미디어 전성시대’와 ‘취향 공동체’, ‘있어 보이게’를 꼽는다.

마지막으로 ‘연극적 개념소비’는 착한 소비라는 가면을 쓴 소비자들의 내면 심리를 파헤친다. 스마트폰으로 기부 앱을 다운받는 사람들. 과연 기부가 목적일까? 수십만 원 대의 에코백을 두서너 개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타적 소비가 기업들의 대의마케팅이 가져온 인위적 결과라면? 착한 소비의 복잡한 이면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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