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이 선진국을 만든다?

지난해 서점가를 강타한 유행어는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 사이토 다카시 교수의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은 출간 5개월 만에 무려 17만부가 팔렸고, 김정운 교수의 신간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역시 종합베스트셀러 20위권에 진입했다. 이 외에도 지난 하반기 동안에만 ‘개인주의자 선언’, ‘고독이 필요한 시간’, ‘나와 잘 지내는 연습’ 등의 신간이 쏟아졌다.

왜 한국인들은 ‘혼자’ ‘고독’ 관련 책을 골라 읽었을까. ‘혼자 있는 시간’ 관련 서적 열풍은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는 현실을 역으로 보여준다. 여기에서 ‘시간’이란 양(量)의 개념이 아니다. 나홀로족(族)은 오히려 눈에 띄게 늘고 있다. 2014년 여가를 ‘혼자서’ 보낸 사람은 56.8%나 됐다.

7년 전에 비해 무려 12.7%로 증가한 수치다.(문화체육관광부 자료) 결국 문제는 ‘혼자 있는 시간’의 질(質)이다. ‘얼마나’가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라는 얘기다. 위의 책 저자들은 하나같이 “혼자 있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말한다.

서울대 배철현 교수(종교학)는 이렇게 말한다. “생각의 힘은 고독에서 나온다.”, “대한민국에서 꼭 필요한 것은 ‘혼자 있기’와 ‘혼자 생각하기’다.” 국내 유일의 고전문헌학자인 배 교수는 본질을 캐묻는 ‘문제적(問題的) 강의’를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인문·예술·과학을 망라한 강의로 21세기형 인재를 양성하는 ‘건명원’의 산파 역할을 맡기도 했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건명원’은 ‘세상에 없던 학교’로 불린다.

배 교수는 ‘자발적 고독’을 자처한다. 경기도 가평군 호숫가에 살면서 일주일에 3~4일간 두문불출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아침에 일어나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골방 한가운데 반가좌를 틀고 앉아 그날 할 일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은 그에게 놀라운 생산성을 안겨다줬다.

최근 그는 500쪽에 육박하는 두툼한 책 두 권을 동시에 냈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이다. 두 권 분량을 합치면 1000쪽이 넘는다. 한 월간지에 3년간 연재한 글에 3분의 2를 새로 써서 완성했는데 이를 위해 그는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했다.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2035년에는 세 가구 중 한 집은 독거가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980년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4.5%에 불과했으며 1990년에도 9%에 머물렀다. 하지만 지난해 1인 가구는 27.1%로 늘었으며 증가속도는 더욱 빨라져 2025년 31.3%(685만2000가구), 2035년에는 34.3%(762만8000가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속도도 빠르다. 미국은 경우 1인 가구 비중이 42년 새 9.6%포인트 증가해 26.7% 수준에 이르렀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35년만에 22.3%포인트 증가했다.

혼자 있는 시간과 1인 가구로의 변화는 모든 것을 개인 위주로 판단하는 극단적 이기주의의 사회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모든 것을 ‘나’를 중심으로 판단하다보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물 건너 간 거나 다름없다. ‘이웃사촌’이 있는 사회가 그리워지는 건 얼마 전 종영한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의 높은 시청률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가끔씩은 아날로그를 추억할 필요가 절실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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