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잘 계셨어요, 혈압약은 안 빼먹고 잘 드시고 계시죠?, 안드시면 안됩니다.”

계곡면 황죽마을 김영철(64세) 이장이 마을회관에 들어서면 매일 같이 하는 말이다.

황죽마을은 현재 31가구 36명의 주민이 벼농사와 고추, 참깨 등의 밭농사를 주로 짓고 살아가는 조그마한 산골 마을이다.

김이장은 10년전 고향인 황죽마을에 귀촌해 8년째 이장 직을 수행하면서 마을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황죽마을은 면소재지로 바로 가는 대중교통이 없어 버스를 두번 갈아 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해남읍으로 나가 계곡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 타야하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면소재지로 일을 보러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김영철씨가 이장을 하면서 달라졌다.

김이장은 동네 어르신들이 면사무소나 농협 일을 보러 갈때면 직접 모시고가 일을 보고 다시 집으로 모셔다 드린다.

또 우편물 확인과 공과금 수납 통장 정리 등 8년째 동네 어르신들의 눈과 발이 되어주고 있다.

귀촌하기 전에는 해남읍에서 양복점과 세탁소를 운영했다. 마을에서 아버지가 하시는 양봉일을 조금씩 돕다가 대를 잇기위해 세탁소를 정리하고 10년전에 황죽마을로 들어 왔다.

하지만 처음에는 벌이 자꾸만 죽어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지금은 벌통을 100여개 까지 늘려 웬만한 수입은 된다고 말했다. 논농사와 밭농사도 조금씩 짓고 있다.

김이장은 항상 어깨춤에 조그마한 가방을 메고 다닌다. 가방 안에는 자동 혈압측정기와 수첩이 들어있다. 수첩에는 이름 전화번호 특이사항이 적혀 있다.

김이장은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를 겸하고 있다. 계곡면에 노인인구가 많은 것에 비해 소규모 요양원이 없다는 걸 알았다.

마을에 소규모 요양 시설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사회복지를 전공하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후 3년 동안 요양보호사 일도 했다.

하지만 소규모 요양시설은 대를 이어서 해야 하는데 자식들이 분가해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어 포기해야만 했다. 그래서 지금은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를 하고 있다.

독거노인생활관리사와 이장직과 연계하다보니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뿌듯하다고 전한다. 또, 마을 어르신들의 맞춤형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계곡에 목욕장이 생겼어도 아르신들이 목욕장 한번도 이용하지 못했다. 본인의 자비를 털어 목욕장 이용료를 부담하고 면사무소 직원들의 차량봉사로 목욕 나들이를 시켜 드렸다.

나중에는 어르신들에게 영화도 보여드리고 싶고 마을 자체적인 공부방을 만들어 배움의 장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이장은 보건소 치매 예방 교육, 노인복지관 생활교육 프로그램을 유치했다, 지난주에는 계곡파출소장을 강사로 초빙해 보이스피싱·절도예방에 관한 교육도 했다.

김이장은 이장을 하면서 각 가정 재래식 화장실을 수세식 화장실로 대부분 교체해줬다. 아직 2~3가구가 옛날 방식으로 거름을 만들려고 재래식을 화장실을 사용하는데 조만간에 수세식 화장실로 교체할 예정이며 상수도관이 오래돼 관로가 자주 파손돼 교체를 신청해놨다.

김이장은 황죽마을은 마을이름 그대로 뒷산에 노란 대나무가 우거져 있고 마을 앞쪽에는 개울이 흐르고 있는 오염이 되지 않은 전형적이 시골 마을이다며 주민들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수 있도록 산책로와 운동 할 수 있는 조그마한 공원을 만들었으면 한다.

또 잘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장뇌삼, 도라지 등을 공동으로 재배 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 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이 없는 시골마을. 노인들만 남은 마을에서 묵묵히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을의 심부름꾼으로, 때로는 이웃의 노인들을 돌보는 보호자로서 궂은 일도 마다치 않고 봉사하는 그들은 바로 '우리 동네 이장님'입니다. 해남군민신문은 그들에게 작은 힘이 되고자 우리 동네 이장님을 찾아 소개하는 난을 운영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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