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읽고 대한민국을 말하다

역사는 데자뷔다. 100여 년 전, 구한말과 21세기 대한민국은 얼마나 다른가? 정치, 외교, 안보 등 분야별 변화의 방향성과 주체가 다를 뿐, 거의 ‘데자뷔’가 느껴질 정도로 당시의 복사판, 또는 축소판이다.

『칼날 위의 역사』가 들려주는 42개의 이야기 중에 첫머리를 장식하는 인물은 실질적으로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이다. 격동의 구한말에 무려 44년, 반세기에 가까운 긴 세월 동안 왕좌에 앉아 있었지만 역사에 남은 고종의 ‘성취’는 ‘망국의 전당’ 등극이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러나 지은이는 역사를 통해 절망 속에서 희망을 구한다.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고종을 첫머리에 세운 것과 대조적으로 조선 후기의 위대한 개혁군주였던 정조 이야기로 이야기를 마무리한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인 신하들, 말하자면 자식 된 도리로 ‘원수를 갚아야 마땅할’ 철천지원수들과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고 정사를 의논해야 하는 지옥 같은 나날들을 이를 악물고 견디면서도 그들의 과거를 ‘기억하되 처벌하지 않고’ 미래 지향적인 개혁정치의 꿈을 펼쳤던 군주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병역 면제,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의 ‘추잡 3종 세트’인 무리 대신에 ‘헬조선’과 ‘흙수저’의 현실을 타파할 수 있을 정조 같은 리더, 류성룡·김육·이경석 같은 고위 공직자가 필요하다.

『칼날 위의 역사』에는 그야말로 백척간두의 위기인 대한민국의 오늘을 뼈저리게 근심하고 더 늦기 전에 조선의 교훈을 깊이 새기자는 소리 없는 외침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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