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친구가 나를 만나러 첫차를 타고 서울서 내려와 막차로 올라갔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친구인데 올해가 가기 전에 얼굴이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첫차를 탔다는 것이다. 친구는 강진 다산초당을 이야기했다. 18년이라는 유배생활을 하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와 같은 걸출한 저술을 남긴 그곳에를 가보고 싶다는 거였다. 이공계를 나온 친구의 이러한 제의는 내심 의외였지만, 중년의 나이가 되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며 다산을 내게 들려주기도 했다. 중3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는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 때문인지 또래들 보다 생각이 깊었다. 공고와 공대를 나와 착실히 기반을 다져 지금은 수도권 전원도시로 주목받는 양평에 노년을 대비한 토지를 마련해 주말이면 찾아가 농사를 짓는 등 나름대로 성공한 중년의 삶을 살고 있다. 양평을 가는 길에 남양주 마현이란 곳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이 다산의 고향이라서 초당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직선의 삶은 불행한 것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를 와 처음 거처했던 주막에서 갑자년(1804)이 시작되던 날, ‘사의재기(四宜齋記)’를 썼다. ‘나이가 많아짐을 생각할 때 뜻 한 바 학업이 무너져버린 것이 슬퍼진다. 스스로 반성하기를 바랄 뿐이다.’ ‘사의’란 말 그대로 ‘마땅히 갖춰야 할’ 네 가지를 가리킨다. 생각, 외모, 말, 움직임 등이 그것이다. 생각은 맑게, 외모는 단정하게, 말은 적게, 움직임은 무겁게 하라는 것으로 유배지에서의 다산을 지탱해준 좌우명에 다름 아닐 것이다.

친구와의 강진 나들이에서 다시 만난 다산. 그 다산을 생각하며, 다산의 오랜 유배생활은 역설적이게도 다산을 단련시키는 계기가 아니었나 생각을 해 본다. ‘사의’로 자신을 경계한 것은 결코 모나지 않은, 원만한 인격을 도야하는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원만함은 유배지에서 뿐 만 아니라 그 이후의 삶을 관통하는 힘으로 작용했으리라. 혹시라도 다산이 직선적이고 모난 삶을 택했더라면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자신의 불운을 원망하며 피폐한 삶을 살다 갔을지도 모른다.

다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새해에는 둥글게 살아보자는 말을 하고 싶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이분법으로 나뉘어 갈등하는 사회가 됐다. 좌니, 우니. 진보니, 보수니 하는 가당찮은 편싸움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국가의 존엄한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지(衆智)를 모아도 시원찮을 판에 판을 깨려고 어깃장을 놓는 형국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아량이다. 그러려면 스스로가 원만해져야 한다. 그래서 둥글게 사는 삶이 필요한 것이다.

인생을 직선으로 살면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 항상 자신의 앞에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비교당하는 삶이다. 그러나 둥글게 살면 언제나 남들보다 앞선 삶을 살 수가 있다. 스스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직선이 아니기에 가능하다. 굳이 선두주자가 아니어도 나름대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며 살아간다. 반면에 직선 위의 삶은 좌절감과 박탈감만 있다. 금수저, 흙수저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그동안 남의 눈으로 세상을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그러한 배반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봐 왔기 때문에 긍정적인 사고보다는 부정적인 가치관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집고 들어 앉아 불만으로 가득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살면 기회는 언제나 있다.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살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직선을 벗어난 둥근 인생을 살아갈 때 세상은 비로소 아름다워진다.

 

왜 '외눈박이‘ 인생을 고집 하는가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두 눈’을 주었다고 한다. 세상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살아가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외눈박이’로 살려고 한다. 외눈박이로 산다는 건 눈앞의 현실만 보는 삶이다. 사는 게 괴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눈앞의 현실을 넘어 삶을 돌이켜 보라.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와 같은 파란만장한 삶의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처럼 결코 녹록하지 않은 인생이 자신을 얼마나 강하게 단련시켜 주었는지 깨닫게 된다면 어떠한 고난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된다.

인생은 강물과 같은 것이다. 계속해서 흘러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머물려고 한다. 집착 때문이다. 이러한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비울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는데도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요즘 ‘백세인생’이라는 대중가요가 인기다. 그러자 ‘~전해라’라는 가사를 인용한 언어유희가 넘쳐난다. 대부분은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속보이는 수작들이다. 오로지 1등만 남는 선거판에서 직선의 삶을 살려는 자들의 아우성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새해에는 우리 모두 둥글게 살자고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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