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004년 모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7조 때문인데 ○○일보 주장처럼 광화문 네거리에서 ‘김일성 만세’라고 부르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는 헌법에 나와 있는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이를 억압하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발언은 이후 크게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단체들은 그가 북한을 찬양했으니 서울시장에서 물러나야 한다며 퇴진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처럼 당시 이 논리에 동조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시인 김수영(金洙暎,1921~1968)은 4.19가 일어나고 제2공화국인 장면 내각이 출범한 1960년 10월에 ‘김일성 만세(金日成 萬歲)’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시를 썼다.

‘한국(韓國)의 언론자유(言論自由)의 출발(出發)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韓國)/ 언론(言論)의 자유(自由)라고 조지훈(趙芝薰)이란/ 시인(詩人)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김일성 만세(金日成萬歲)’/ 한국(韓國)의 언론자유(言論自由)의 출발(出發)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韓國)/ 정치(政治)의 자유(自由)라고 장면(張勉)이란/관리(官吏)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4.19가 일어난 후, 김수영은 4월 26일 조간에 발표한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는 시를 통해 이제 ‘상식’이 된 민주주의와 자유를 이야기한다. 그날 오후 1시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를 발표한다. 그리고 출범한 제2공화국 헌법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사전 허가 또는 검열제를 금지하는 등 자유권의 강화가 많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장면 내각은 여전히 보수적이었고, 사상에 대한 통제 역시 이전의 이승만 정권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에 김수영은 언론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는 상황을 고발하기 위해 이러한 시를 썼다. 이 시는 직설적인 제목으로 인해 모든 언론에서 수록을 거부했고, 이후에 제목을 ‘잠꼬대’로 바꿔 발표를 하려 했으나 결국 발표되지 못했다가 사후 40년이 되는 해인 2008년에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공개된다.

김수영은 당시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시 ‘잠꼬대’를 ‘자유문학(自由文學)’에서 달란다. ‘잠꼬대’라고 제목을 고친 것만 해도 타협인데, 본문의 ‘×××××’를 ‘×××××’로 하자고 한다. 집에 와서 생각하니 고치기 싫다. 더 이상 타협하기 싫다. 허지만 정 안되면 할 수 없지. ‘’부분만 언문으로 바꾸기로 하지. 후일 시집에다 온전하게 내놓기로 기약하고. 한국의 언론자유? God damn이다!’

‘김일성 만세’를 외치는 대자보 수십여 개가 최근 고려대에 나붙어 관심을 끌고 있다. 김수영의 시를 패러디한 학생들의 대자보는 경찰의 지난 5일 2차 민중총궐기 집회 불허, 정부·여당의 ‘복면금지법’ 추진 등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 시대 상황을 비꼬며 대학가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가 55년이 지나 대자보로 첫 등장한 것은 지난달 30일 경희대였다. 그리고 이어서 지난 9일 고려대에 등장했다.

대자보는 ‘김일성 만세’를 패러디한 ‘독재자의 딸’이란 풍자시로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다. 일부 대학가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헬조선’에 이은 또 다른 조롱은 아닌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저작권자 © 해남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