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앨비스 프레슬리’로 불리는 가수 남진(본명 김남진, 69)은 나훈아와 함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70년대 최고의 인기가수로 이름을 날렸다. ‘오빠부대’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이들의 팬심도 뚜렷이 갈려 당시 극장을 중심으로 한 이른 바 ‘리사이틀’ 공연 때면 매회 전석이 매진될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저 푸른 초원 위에’로 시작되는 ‘임과 함께’는 아직도 잔칫집이나 회식자리에서 애창되는 불멸의(?) 히트곡이다.

남진은 1946년 목포에서 목포일보의 사장이었던 김문옥의 3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남진은 국회의원이던 아버지 덕분에 유복하게 자랐다. 김문옥은 목포 최고의 거부이자 야당계의 거물이었다. 신익희, 조병옥 등이 호남 지역에 가면 항상 그의 집에서 머물렀으며 김대중 또한 인사차 들렀다고 한다. 하지만 형 김상진이 아버지를 이어 신문사와 정계에 관련된 사업을 이어가자 남진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이후 서울로 상경해 용문중과 용문고를 졸업한 남진은 아버지 몰래 서라벌예대 연극과에 입학했다가 자퇴하고 한양대 연극영화학과에 재입학했다.

평소 배우 지망생이던 남진은 약 2년간 한동훈 음악학원에서 트레이닝을 받고 1965년 약관의 나이에 앨범 ‘서울 플레이보이’를 발표하면서 가수로 데뷔한다. 데뷔 당시 여러 팝 장르의 노래들을 불렀지만 히트를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울려고 내가 왔나’가 처음으로 히트하자 일찌감치 트로트로 전향한 남진은 1967년에 히트곡메이커였던 작곡가 박춘석의 ‘가슴 아프게’ 를 부르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다. 같은 해에는 동명의 영화‘가슴 아프게’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배우로도 활동한다. 데뷔와 동시에 인기를 얻었던 남진은 1968년 해병대 청룡부대에 입대하여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한다.

목포에 가수 남진 이름을 딴 야시장이 문을 열었다. 전남도가 목포 자유시장을 남진 야시장으로 꾸며 지난 11일 개장식을 가졌다. 행정자치부 공모사업으로 전통시장 야시장사업의 3호점인 남진 야시장은 국비 5억원 등 총 9억5천900만원의 예산을 들여 3천559㎡의 매장에 50개의 매대가 설치돼 세발낙지·홍어 등 목포 5미와 닭강정 등 별미 5선의 남도음식, 다문화음식, 예술 프리마켓, 문화공연 등이 한데 어우러져 먹고, 보고, 즐기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운영된다. 개장시간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4∼10월은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다.

전남도는 남진 야시장을 야간 관광명소로 키울 계획으로 있다. 특히 KTX 관광객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한다는 것이다. 목포시도 단순히 고객을 맞이하는 것에서 벗어나 관광시티버스 등과 연계해 인근의 갓바위, 삼학도, 유달산 등 관광지와 향토명품 육성사업으로 조성되는 금속공예관 등 문화와 연계한 시장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 이후 목포가 낳은 인기가수 남진을 내세워 전통시장을 새로운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전남도와 목포시의 발상이 나름 기발해 보인다.

해남군도 전통시장 살리기 차원에서 고객들을 위한 이벤트를 기획해 볼 필요가 있다. 시장은 이제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닌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그 기능을 넓혀 가는 추세다. 목포의 남진 야시장이 전통시장 부활의 새로운 신호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작권자 © 해남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