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 18년(1692)에 세운 미황사(美黃寺) 사적비에 따르면 이런 기사가 있다.

‘신라 경덕왕 8년인 749년. 돌로 만든 배가 달마산 아래 포구에 닿았다. 금인(金人)이 노를 젓고 있던 배 안에는 화엄경 80권을 비롯한 여러 경전과 불상, 금궤, 검은 돌 등이 들어 있었다.

달마산에 주석하던 의조 화상이 이 소식을 접하고 그 배에 다가가자 안에 있던 검은 돌이 둘로 갈라지면서 검은 소가 나왔다.

그리고 그때 포구에 있던 해남 사람들은 그 소를 따라 달마산을 오르면서 불상과 경전 모실 곳을 정하게 되었는데 소가 처음 누운 곳에는 통교사(通敎寺)를, 마지막 머문 자리에는 미황사 대웅보전을 지었다.

'달마산 자락에 자리잡은 천년고찰 미황사는 이런 내력을 가진 아름다운 절이다. 이 절에 주지인 금강(金剛) 스님이 있다.

해남 삼산면 구림리 용전마을이 속가(俗家)인 금강 스님의 미황사 생활은 1989년에 시작됐다.

한때 12암자를 거느리고 400여 명의 스님이 기거하던 미황사는 1887년 스님들로 구성된 중창불사군고단 40여명을 태운 배가 청산도 앞바다에서 침몰해 스님 대부분이 변을 당한 이후 몰락의 길을 걷는다.

오래도록 절이 비어 있다는 소식을 접한 금강 스님은 은사 자운 스님을 미황사로 모셨다. 해남고 1학년인 열일곱 살 때 집 근처 대흥사로 출가한 이후 은사 스님을 제대로 시봉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1991년 현공 스님에게 주지를 맡아줄 것을 부탁하고 서울로 올라가 중앙승가대에 입학을 한다. 그 후 백양사 운문암에서 공부하던 중 옷가지를 챙기러 미황사에 들렀다가 발목을 잡히고 만다.

현공 스님이 밥해주는 보살에게 “앞으로는 금강 스님보고 주지 스님이라 하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길을 떠난 것.

그때가 2000년 봄이었다. 미황사 중창 불사의 원력을 세웠던 현공 스님은 금강 스님의 요청으로 회주가 되어 함께 불사를 일으킨다.

‘미황사 공동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금강 스님이 주지를 맡아 이룬 일들은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중앙승가대 신문 기자와 학생회장, 전국불교운동연합 부의장, 범종단개혁추진위 공동대표 등을 지냈을 정도로 금강스님은 사람 만나 차 마시기를 좋아하고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답게 초등 한문학당, 중등 문화학교, 템플 스테이, 참선 수련회, 서정분교 바로세우기, 괘불재 등등 많은 일들을 해냈다.

이런 노력으로 송지초등학교 서정분교는 올해 초등학교로 승격했다.

높이 12m, 폭 5m의 괘불(보물 1342호)을 1년에 한 번 대중에 공개하는 괘불재(掛佛齋)가 오는 24일 열린다.

올해로 16번째. 오후 1시 시작되는 괘불재는 스님들과 서정리 마을 청년 20명이 괘불을 절 앞마당으로 옮기는 의식으로 시작해 법회를 알리는 불문 낭송, 108명의 대중이 1년간 마음을 모아 농사지은 것들을 올리는 만법공양, 기도의 시간인 통천, 대흥사 회주인 보선 스님의 법어 등으로 이어진다.

오후 6시 시작하는 음악회에서는 해남 지역 사람들의 남도소리에 이어 바이올리니스트인 이경선 서울대 교수가 이끄는 서울 비르투오지 챔버 오케스트라의 클래식 음악 연주가 있을 예정이다.

이밖에 특별행사로 민중화가 이종구 화백의 '절집기행' 특별전시가 미황사미술관 자하루에서 열리며, 해남 특산물 전시 판매장도 마련된다.

아울러 괘불재와 음악회를 즐기고, 천년역사길 걷기, 산사체험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1박2일 일정(24~25일)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준비돼 깊어가는 산사의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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