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새긴 그림이 수수 천년 살아있다

한 사내가 두 팔 들어 뭔가를 살피고 있다 성기를 다 드러낸 채… 등 뒤에는 거북 세 마리, 고래 떼가 사내를 향해 오르고 있다 새끼고래를 등에 업고 있는 어미 고래, 작살이 꽂힌 고래, 물을 뿜고 있는 고래, 고래 지느러미를 잡고 있는 사내도 보인다. 점박이 무늬의 호랑이와 노루, 눈짓이 은근한 학과 그걸 외면하고 흘끔거리고 있는 학, 부부인 듯 아닌 듯 물 너머로 지는 하루

시(詩) 없이 행복하기만 하루가 사슴 배처럼 불룩하다

 

<시작메모>

다 드러내고도 부끄럽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겹겹이 껴입고도 부끄럽고 춥습니다. 돌에 새겨진 몸의 글들에는 영혼이 느껴집니다. 사람들이 애써 그 흔적을 보고 싶은 것은 잠시나마 그 신화의 시대, 무욕의 시대로 가보고 싶은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여기에는 시가 필요 없지요. 자체가 바로 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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