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1년 30년 만에 지방선거가 부활하며 다시 시작된 지방자치제도가 벌써 햇수로 25년이 됐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출범한 지자제는 민선 6기 자치단체장들을 중심으로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지자체 출범과 곧 이은 21세기로의 진입은 가히 속도를 무색케 하는 정보화시대에 맞춰 급변의 시간 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정부차원에서도 안으로는 지방화를 꾀하면서 밖으로 세계화라는 투 트랙을 강조해 왔다.

세계화를 내세워 21세기 노마드(nomad, 유목민)를 얘기한다. 세계를 거침없이 유목민처럼 누비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21세기를 ‘노마드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 학교마다 ‘세계화’를 강조하다 보니 지방화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진 느낌이다.

지역의 정체성에 바탕을 둔 지역개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일부 지자체들은 이른바 ‘지역학’을 개설하고 체계적인 연구를 하고 있는 추세다.

지역학은 ‘통섭’의 결정판

이러한 지역학은 지난 1990년대 중반 대전시가 ‘대전학’을 시작한 것을 비롯해 대부분의 광역자치단체에 설치돼 있다. 지역학연구기관들은 대체로 세 부류로 나뉜다. 대학에 연구소를 설치한 경우, 지역발전연구원에 연구센터를 설치하거나 박물관을 비롯한 기관단체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것 등이다.

대학에 연구소를 설치한 경우는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전남대 호남학연구소, 창원대 경남학연구소 등이 있다. 지역발전연구원에 연구센터를 설치한 경우는 대구경북학센터, 충북학연구소, 강원학연구센터, 제주학연구센터, 부산학연구센터, 울산학연구센터 등이며 박물관에서 지역학을 수행하는 경우는 서울역사박물관, 수원화성박물관, 전주역사박물관 등이 있다.

‘안동학’은 안동시의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맡고 있다. 대학에 지역학 강좌를 설치하여 운영하는 곳도 있는데 ‘수원학’, ‘용인학’, ‘천안학’ 등이 그렇다.
 

지역학은 오늘날 그 지역을 만들어내고 변화시켜온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고 그 기반 위에서 보다 나은 지역의 미래를 모색하는 종합적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지역학을 통해 해결해 보겠다는 차원이다.

이제 지역학은 자치시대 지역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학문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기에 많은 지자체가 지역학 연구조직을 갖추고 연구사업을 지원한다. 지역이 독자적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는 시대를 맞아 이처럼 지자체별로 지역학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맞춰 해남군도 ‘해남학’을 개설해 운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역을 이해하고, 그런 바탕위에 진로를 모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중구난방, 주먹구구식으로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려 든다면 자칫 시행착오만 되풀이할 우려가 있다.

지역에 대한 폭넓은 인문학적인 접근과 빠르게 진화하는 사회의 변화를 정확하게 읽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할 때 미래는 긍정적이다. 지역학은 어찌 보면 ‘통섭 (統攝,Consilience)’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현대적 관점으로 볼 때 각 지식의 분야는 각각의 연구 활동에서 얻어진 사실들을 기반으로 하는 학문이다.

그렇지만 또 다른 연구 분야의 활동에 의존하는 면이 크다. 예를 들면 원자물리학은 화학과 관련이 깊으며 화학은 생물학과 관련이 깊다. 물리학을 이해하는 것 또한 신경과학이나 사회학, 경제학을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된다. 이렇듯 다양한 결합과 연관은 여러 분야 간에 이뤄지고 있다.

해남을 해남답게 만들어야

해남은 군 전체가 하나의 역사박물관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다양한 문화자원을 갖고 있다. 또한 삼 면이 바다인 반도의 특성상 모든 것이 풍요로운 곳이다. 간척지로 인해 광활한 농토가 있고, 천혜의 갯벌은 수산자원의 보고나 다름없다.

뿐인가. 겨울철 전지훈련지로, 철새 도래지로 주목받을 정도로 자연환경도 뛰어나다. 하지만 이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효율적인 성과를 내기 위한 접근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해남학’이 절실한 까닭이다.

각 분야에 전문성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교수진을 운영하는 한편 정기적인 포럼(forum)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다양한 공룡 화석이 발견된 우항리는 공룡뿐 아니라 지질학적으로도 연구할 가치가 높은 곳이다. 산이와 화원면의 녹청자 도요지는 우리나라 청자의 기원을 밝힐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다.

또 북일면을 비롯해 삼산과 현산, 송지면 등에 분포한 고분들은 고대사의 열쇠를 죄고 있다. 이들 문화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농업군으로서 최근 부쩍 관심이 높아진 6차 산업의 정밀한 연구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모든 것이 해남을 해남답게 만들기 위한 ‘해남학’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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