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를 보면 낯선 단어들이 자막으로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브로맨스’,‘싱크로율’,‘리즈시절’,‘그루브’ 등과 같은 외래어 또는 합성어가 있는가 하면 ‘멘붕 상태’,‘썸 탄다’,‘디스 하냐?’ 등 우리말과 외래어를 섞어놓은 것, 그리고 ‘심쿵’,‘광탈’,‘장미단추’ 등 어휘를 축약한 신조어들이 판을 친다. 주로 SNS상에서 이뤄지는 문자를 통해 주고받는 대화도 이처럼 극도로 함축된 낯선 단어들 투생이다.

사정이 이쯤 되다보니 나이든 세대에서는 이들 젊은 세대 위주로 통용되는 이런 신조어들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인터넷의 발전 속도에 맞춰 우리네 젊은이들의 언어도 급속히 진화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표준어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무차별한 조어의 범람

TV에서 낯선 신조어를 발견하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 무슨 뜻인가를 찾아보는 것은 요즘 새로 생긴 습관 중 하나다. 그렇지 않으면 혹시라도 ‘쩌는 쉰세대’로 매도되는 ‘대략 난감한’ 상황으로 몰릴까 하는 우려에서다. 1990년대에 ‘즐’이니 ‘헐’과 같은 일종의 감탄사와 같은 신조어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저 애교수준으로 받아들였으나 지금의 무차별로 진화한 기발한 조어(造語) 앞에서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다.

그야말로 제2의 한국어가 통용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지경에 와있는 것이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언어는 또 10대와 20대, 그리고 30대 직장인들이 쓰는 언어로 세분화되고 있다. 젊은 세대들 간에도 언어에 대한 격차가 발생해 신조어 알아맞히기와 같은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젊은이들의 재기발랄한 언어유희가 속도에 부응한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겠지만 나이 든 기성세대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부모자식 간은 물론이요, 형제자매 간에도 이질적인 언어로 인해 자칫 소통의 단절이라는 어색한 상황이 올 지도 모른다. 물론 표준어의 이면에는 은어나 속어와 같은 음성적인 언어가 있다. 은어와 속어는 은밀하고 신속하게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험한 일을 하는 집단에서 주로 통용된다. 요즘 젊은이들의 언어도 은어와 속어의 범주로 볼 수 있겠으나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인해 혹시라도 인성마저 비뚤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마저 든다.

이렇게 걱정이 앞서는 것은 학생들의 언어가 거칠어지고 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대화가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난다고 할 정도로 도발적이다. 여기에는 모범생으로 분류되는 학생들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적으로 거친 말들을 쓴다. 정제되지 않은 언어습관은 어른들에 대해서도 그대로 쓰는 경우마저 있어 세대 간에 갈등을 부추긴다.

젊은이들의 이런 언어습관은 어른들의 잘못도 크다. 자식에 대한 과잉보호 결과 성인이 돼서 결혼을 해도 여전히 ‘아빠’라는 호칭을 쓰는 것인 요즘의 대체적인 모습이다. ‘자식 바보’니 ‘손주 바보’니 하다 보니 아이들의 버릇만 나빠진데다 여기에 언어의 이질감이 더해지면서 종전의 ‘장유유서(長幼有序)’와 같은 질서마저 무너져가고 있다. 일례로 요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어른들에게 좌석을 양보하는 젊은이들을 보기가 힘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회의 의식구조가 극도로 이기주의적인 면으로 바뀌면서 남에 대한 배려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모든 것에 있어 ‘나’가 우선이다. ‘우리’라든가, ‘더불어’라는 말은 소통이라는 단어의 도구로서 필요할 뿐, 실제 생활에서는 별로 상관없는 말이됐다. 언어의 이질적인 속성은 이처럼 인간관계의 소통마저 그르치고 있는 것이다.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언제부터인가 ‘소통’은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화두로 등장했다. 특히 정치권에서의 소통은 더욱 절실하기만 하다. 일상에서도 소통의 부재는 쓸데없는 오해를 부르고 자칫 갈등과 불신을 조장한다. 이렇게 소통이 이 사회의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현실에서 언어의 이질감으로 불통의 벽이 높게 쌓여간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그렇다고 급속히 진화하는 신조어에 대한 규제를 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표준어에 대한 정의도 무색해질 판이다. 일상적으로 소리 나는 대로 통용되는 언어를 표준어로 정하는 추세에 비춰 봐도 그렇다. 한때 언어의 순화를 정책적으로 강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무한경쟁의 시대를 살면서 언어순화란 기대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때일수록 인심은 각박해지고 언어 또한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어찌 됐든 신조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신조어 모음을 검색이라도 해보자. 정부와 국회가 경제 살리기에 매진할 것을 천명했으니, ‘혹시나’하는 마음의 기대로 남겨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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