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군은 참으로 복된 땅이다. 무엇 하나 모자람 없이 차고도 넘쳐난다. 세 개의 반도로 된 해남 땅은 방조제 공사로 인해 바다가 메워지면서 넓은 간척지가 생겨났다. 삼 면이 바다로 된 천혜의 환경을 갖춘 해남은 힐링의 고장으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이러한 복토에 걸맞게 농수산업 1조원 시대를 열어가는 해남군은 어디를 가더라도 풍부한 먹거리와 맛집들이 있어 넉넉한 인심을 맛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처럼 곳곳이 풍요로우면서도 정작 자신있게 추천할만한 대표 음식을 꼽으라면 무엇을 선택해야할지 선뜻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 지역민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해남의 것을 소홀히 여기는 지역의 정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불어 같이 가면 훨씬 더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음에도 독불장군식으로 무조건 상대를 한 수 낮춰보는데서 비롯된 결과라 하겠다.

맛에 열광하는 시대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쪽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행과 레저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여기에 맞춰 매스컴은 온통 맛집 소개에 열을 올린다. 이러한 영향으로 어지간한 곳의 유명 맛집들은 식도락가들로 장사진을 이루기도 한다. 또 여행에 앞서 사람들은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여행지의 웬만한 맛집들은 미리 파악하고 떠난다. 이러한 여행의 속성을 재빨리 파악한 지자체들은 여행 안내도에 자기 지역 맛집들을 소개하고 있다.

말하자면 지자체가 공식 인증한 맛집들인 셈인데 이런 노력에도 홍보효과는 그리 크지 않은 모양이다. 현명한 소비자들은 대체로 알음알음으로의 정보를 더 신뢰하는 편이어서 맛에 스토리텔링이 더해진 감동적인 이벤트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유명한 맛집을 가보면 원조로 인정받은 맛집에만 손님들이 몰린다. 맛의 차이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원조로 공인받은 식당에 손님들이 몰리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다름 아닌 ‘그 집에 가봤다’는 것만으로 여행의 확실한 인증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렇다보니 맛집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식도락가들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요즘 맛집들은 인터넷상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이른바 파워블로거들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한다. 맛에 관한한 전문가 수준의 감식안을 갖고 있는 이들 파워블로거들은 음식뿐만 아니라 맛집의 세세한 부분까지 포스팅하며 평가를 내린다. 물론 이들의 평가가 모두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인터넷상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맛집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일부 지자체에서는 단순한 맛집 소개에서 자기네 지역의 대표적인 먹거리를 내세워 홍보하는 등 일종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동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목포 5미’니 ‘고흥 9미’니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목포의 경우 세발낙지, 홍탁삼합, 꽃게무침과 꽃게장, 민어회, 갈치조림 등을 지역의 대표 먹거리로 꼽고 있다.

고흥은 참장어, 낙지, 삼치, 전어, 서대, 굴, 매생이, 유자향주, 붕장어 등 무려 아홉 가지 먹거리를 홍보하고 있다.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한 먹거리가 여행객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이제는 이들 먹거리를 모두 맛보려는 맛집 체험여행객들도 늘어나고 있다. 거기까지 가서 그것도 못먹고 왔느냐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듣지 않으려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요즘 유행하는 ‘인증샷’을 남기기도 한다. 그야말로 맛에 열광하는 시대다.

해남군의 경우 이들 지역보다 월등한 먹거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여행객들에게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먹거리에 대한 제대로 된 스토리텔링이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맛으로 승부하는 데서 벗어나 이제는 여기에 감동적인 이야기를 입혀야 한다. 음식에도 차별화된 명칭을 붙일 필요가 있다. 독특한 네이밍(naming)은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다. 예를 들어 ‘땅 끝에 갔으면 이러이러한 것은 꼭 먹어보고 와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맛있는 해남’을 위하여

가까운 영암 독천은 ‘독천 낙지’라는 옛 명성 하나를 갖고 여전히 성업 중이다. 강진은 한정식을 내세워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함평은 육회비빔밥, 장흥은 한우와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을 함께 불판에 구워먹는 ‘장흥삼합’이 여행객들에게 인기다. 한편 해남은 돌고개에 ‘통닭거리’를 조성해놓았지만 이를 아는 여행객들은 드물다. 코스별로 맛보는 닭요리는 해남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임에도 일부러 이를 맛보기 위해 해남을 찾는 여행객들은 거의 없다. 김의 주산지답게 김국도 해남의 별미지만 제대로 된 김국을 내는 식당은 찾기가 어렵다. 뿐인가.

전복, 낙지, 개불, 숭어 등등 풍요로운 바다의 해산물도 그득하건만 이를 제대로 요리해 내는 맛집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이는 그만큼 해남의 맛을 알리는데 소홀히 한 면도 없지않으나 맛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제는 제대로 된 해남의 맛을 찾아줘야 할 때다. 지역별로 대표 먹거리를 선정하고 음식에 대한 스토리텔링 기법을 도입해 보자. ‘힐링 해남’을 위해 ‘맛있는 해남’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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