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신비’라는 한국 특산종인 황칠(黃漆)나무가 주목받고 있다. 황칠나무에서 나오는 천연 도료 황칠은 1000년 동안 색이 변하지 않고 나무뿌리와 줄기 잎 열매 모두에 약효가 있다. 황칠나무의 학명인 ‘덴드로파낙스 모비페라(Dendropanax morbifera)’를 풀이해 보면 덴드로는 ‘식물’, 파낙스는 ‘만병통치약’, 모비페라는 ‘병을 가져간다’는 뜻이다. 학명으로 본 황칠나무는 ‘만병통치 약용 식물’이라는 의미다.

그동안 다양한 연구를 통해 황칠나무가 항암 작용, 면역력 증강, 간 질환·당뇨 치료, 가래·기침을 줄이는 진해거담 효과, 신경 안정 등의 효능이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 전국에 분포한 황칠나무 숲 2400㏊ 가운데 2000㏊는 전남에 있다. 전남 해안과 제주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확인된 황칠나무는 물이 잘 빠지는 기름진 토양과 경사지에서 잘 자라난다. 황칠나무는 상처가 나면 스스로 치유·보호를 위해 면역력과 살균력을 높이는 액체인 황칠을 분비한다. 사람 가슴 높이 부근 둘레가 20㎝ 정도 되는 나무에서 10~50g의 황칠이 나오는데 귀한 황칠은 1㎏당 1000만~3000만 원을 호가해 황금에 비유되기도 한다.

중국 당태종 이세민의 용상(龍床)이나 갑옷과 투구에 칠하던 것이 한국 황칠나무에서 나오는 황칠이었다. 황칠은 백제 장수들의 갑옷인 명광개(明光鎧)에도 쓰였다. 명광개는 ‘거울처럼 빛을 반사하는 갑옷’으로 적의 눈을 부시게 해 무력화했다. 황칠은 고구려 철갑기마병(개마무사)에게도 쓰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만큼 황칠은 고대 중국과 일본 상류층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황칠은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안식향(安息香)이 있고 1000년을 넘게 가는 천연 투명 도료이기도 했다. 황칠은 흰 종이에 칠하면 황금색을 띠지만 나무에 칠하면 황토와 비슷한 색을 낸다. 당태종의 갑옷은 금이나 황동에 황칠을 칠해 황금빛을 띠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황칠나무를 26년간 연구해 ‘천년의 신비’를 부활시킨 전문가가 있다. 황칠 숙련 기술전수자 1호로 지정된 정병석 씨가 그 주인공이다. 정 씨는 36년간 교직에 몸담았고 광주시교육청 교육국장을 지낸 교육자 출신이다. 그가 황칠나무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 광주과학고 교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교장에게서 전국과학전람회에 논문을 출품해 보라는 권유를 받는다. 전남대 생물학과 출신인 그는 당시 생물학과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정 씨는 1992년 10월 ‘전통 도료 황칠 재현을 위한 황칠나무의 특성 및 이용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전국과학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는 현재 화순과 완도 보길도에서 황칠나무 농장을 운영하면서 황칠연구소를 열고 황칠나무를 보급하는 한편 건강식품을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또 황칠나무 숲이 안식향을 내뿜고 면역력을 높여 주기 때문에 편백나무 숲 못지않은 치유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황칠나무가 농수산물 수입 개방 확대의 파도를 이겨 낼 토종 자원이에요. 세계적으로 약효를 인정받을 날이 곧 옵니다. 황칠나무를 세계적으로 귀한 우리 자원으로 잘 가꿔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을 뿐이에요.” 황칠나무로 6차 산업 자원화를 꿈꾸는 정 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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