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22개국에 판권이 팔리면서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케르스틴 기어가 다시 돌아왔다. 이번 작품은 일상에 지친 한 여자가 불의의 사고로 5년 전으로 돌아가 운명과의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이야기다. 타임 슬립이라는 다소 흔하고 익숙한 판타지 코드를 녹여낸 이 스토리가 식상하고 허무맹랑한 로맨스 소설로 읽히지 않는 것은 주인공 카티 그리고 그녀의 주변 인물들을 둘러싼 각각의 에피소드가 너무나 사실적이고 설득력 있기 때문이다.

기어는 이 책에서 부부 혹은 연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양상을 아주 현실감 있게 보여주며, 사람들이 유혹에 빠지는 과정을 디테일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필치로 그려냈다. 그리고 주인공 카티의 상황을 통해 독자에게 단계별 질문을 던진다. 소설에 내포된 작가의 질문을 책 소개로 대신한다.

여자의 삶은 여러 가지 문제로 가득 차 있다. 케르스틴 기어는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통해 현대 여성들을 둘러싼 문제들에 다각적으로 접근하고, 그 문제의 실체를 한 꺼풀씩 벗겨내왔다. 이번 소설에서 그녀가 접근하고자 한 여성의 문제는 남자와의 관계, 바로 ‘사랑의 실체’다.

케르스틴 기어는 주인공 카티의 삶을 통해 가슴속에서 들끓는 권태와 불만을 외면하지 말고 꺼내어 마주 보고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길을 찾길 권한다. 그녀가 이 작품에 심어놓은 판타지 요소는 그 과정을 실감 나게 그리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카티는 남편 펠릭스와 함께 있을 때 무한한 행복감과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 행복감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완벽히 외면하지 못한다. 결혼 생활 5년째에 접어들면서 그들의 일상은 단조로워지기 시작하고, 사랑도 식어간다. 처음 만났을 때 ‘너는 내 운명’이라며 하이에나처럼 달려들던 그의 눈빛에선 어느새 연애 시절의 뜨거움이 식은 지 오래다. 의심이 커져갈 무렵 카티는 우연히 마티아스를 만난다. 그리고 그의 색다른 매력에 점점 마음을 빼앗기는 자신을 발견한다.

방황 속을 헤매던 카티는 도심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원에서 겨우 의식을 되찾는다. 그런데 그날이 하필 5년 전 펠릭스를 처음 만난 바로 그날이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지금껏 자신이 살아온 무의미한 인생을 ‘반전’시킬 결심을 하게 된다.

사고 직전 새로운 유혹 앞에 흔들리며 설렘을 느끼는 마음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마음을 공유하며 독자는 빠른 속도로 이 이야기에 빠져들 것이다. 사고 직후 5년 전으로 돌아간 카티가 펠릭스와의 만남을 거부하는 과정 하나하나는 한 편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는 듯 흥미진진한 재미를 안겨준다.

이 소설이 주는 또 하나의 재미는 기어가 설정한 카티의 ‘두 번째 삶’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어느 방향으로 해석하든, 독자는 카티의 삶에 자신의 상황을 투영시켜 돌아보기를 멈추지 못할 것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고군분투하는 카티의 운명을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그녀가 새로운 삶을 찾은 장면에서 독자 또한 제 삶의 진짜 보물을 찾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소설이지만, 먼 길을 돌고 돌아 자기만의 진짜 행복을 깨달은 여자의 눈물겨운 여행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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