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올해 76살인데 이장 한지 9년차여. 주민들이 한 번 해보소 했던 것이 벌써 이렇게 됐구만. 주민들이 워낙 잘 따라주니 별 탈 없이 이장할 수 있었지. 그게 참 고마워”

해남읍과 삼산면의 경계에 위치한 마을인 삼산 창리. 40여호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창리에는 삼산 최고령 이장인 이종헌(76)이장이 있다. 이곳에서 태어나 쭉 살아왔다는 그는 창리를 그 어느 마을보다도 살기 좋은 마을이라 표현한다.

창리가 살기 좋은 이유는 조용하고 안심할 수 있는 마을이기 때문이란다. 창리는 국세를 보관했던 창이 있던 곳이었는데, 도둑들이 창리를 모르고 지나갔을 정도로 외진 곳이라 안전한 마을이었다고.

창리에 사는 80여명의 주민들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있다. 예부터 땅이 좋아 농사가 발달했단다. 지난 1966년에는 해남 통일벼 시범마을로 선정됐고, 도지사상을 받았을 정도다. 지금은 새누리벼 등 여러 품종을 심고 있다.

예전에는 주민들이 다함께 영농법인을 만들었고, 마을 특작물로 미나리와 딸기를 선택해 심었다. 하지만 점질토에 가까운 창리의 토양 특성상 특작물 재배보다는 논농사에 주력하고 있단다.

그렇다보니 밭농사의 규모가 크지 않다. 깨·고구마·들깨·마늘·고추 등을 심는데, 각자 먹고 이웃에게 나눌 수 있는 정도만 심게 된단다.

“예전에 고산 윤선도가 우리 마을을 지나며 부채로 눈을 가렸다는 구전이 있어. 명당자리인데 놓쳐서 아까운 마음에 마을을 쳐다보지 않은거라고 하지. 나도 창리가 삼산에서 일등 명당마을이라 생각해”

그가 창리를 명당마을이라 생각하는 건 좋은 땅에 좋은 주민들이 있어서다. 추석 전 다함께 근처 단체관광도 다니고, 경로잔치 열 때는 향우들이 후원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회관 앞에서 다함께 식사하고 서로의 일을 돕는 마을 두레도 활발했었단다.

지금은 두레 대신 청년회가 마을 유대감에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이 35명 정도 되는데, 나이든 부모님을 모시며 사는 젊은이들이 마을 청년회를 만들었단다.

청년회는 마을 애경사가 있으면 맨발 벗고 나서 일을 돕는다. 주민 상을 치르면 묘를 만드는 건 청년회의 몫일 정도다. 한마을 주민이 하늘로 가는 길을 마을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줄 수 있어 다행이란다.

안타까운 건 후대에 마을을 물려주고 싶어도 농촌에 사는 젊은이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점이다. 아이들을 찾아보기도 어려워졌다. 40년 전까지는 노인들의 장수를 빌며 동계제도 지냈지만 청년들이 도시로 떠나며 자취를 감췄다.

마을 애경사 돕는 청년회가 큰 힘
고령마을 이끌기 위한 젊은 인재 필요해

시대가 바뀌면서 농촌도 바뀌었다. 젊은 주민들이 줄어들고 농촌도 개인화되면서 농기계 위주의 농업방식으로 변했다. 농산물 가격이 떨어지면서 나이든 소농들은 농기계 빌리는 값도 부담될 정도다. 비용과 건강 문제로 땅 임대를 주는 노인들이 늘어가는 상황이란다.

그래도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소임을 다하겠다는 이 이장. 그는 이장으로 일하기 위해선 주민이 놓친 세세한 것까지 챙길 수 있는 꼼꼼함이 필요하단다. 특히 고령마을일수록 더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고.

“지금도 우편함에 들어온 세금 고지서가 뭔지 몰라 세금을 안내는 주민도 있어. 세금 왜 안냈냐고 물어보면 ‘나 안받았소’라고 말하제. 이장이 주민들과 이야기 많이 나누고 만나면서 알려줘야 해. 집에 가만히 앉아선 주민들 일을 알 수가 없거든”

그는 올해를 끝으로 이장에서 물러날 생각이다. 더 발전하는 창리가 될 수 있도록 젊은 후배들이 마을을 이끌어야 한단다. 남은 임기동안 만족할 수 있을 정도의 마무리를 짓고 싶다는 이 이장. 그가 가꿔온 9년의 노력이 새로운 창리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해남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