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지 못했어요. 다른 길을 찾아 내 인생을 만들어왔지만, 그 때 배우고 싶었던 걸 못한 기억이 참 아프더라고요. 해남의 아이들이 예전의 제 모습같은 상황이 되지 않았으면 싶었고, 주사랑 지역아동센터를 열게 됐습니다”
주사랑지역아동센터의 대표이자 해남 지역아동센터연합회 회장인 김상록(58)대표. 건축업계에 33년 동안 매진하다 지난 2007년 주사랑지역아동센터를 설립했다. 바쁘게 일 해온 나날을 되돌아 본 어느 날, 이젠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의 어릴 적 기억은 아이들에게 베풀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계기다. 16살부터 지금까지 43년 동안 주일학교 교사를 맡은 것도 아이들이 김 대표보다 다양한 세상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지금은 주사랑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면서 아동복지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전반에 관심을 갖게 돼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09년에는 딸인 김미선(34)씨가 센터장으로 부임해 큰 힘이 되고 있다. 피아노를 전공하고 피아노학원을 운영했던 김 센터장 덕분에 아이들 예체능 실력이 다른 아동센터보다 뛰어나단다.
“산이에는 별다른 학원이 없어요. 형편이 넉넉한 아이들은 읍이나 목포로 학원을 다니는데,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갈 곳이 없죠.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따로 없으니까요. 그런 아이들과 함께 놀이도 하고, 학습 지도도 해보고 싶었어요”
김 대표는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주택을 지역아동센터 시설로 리모델링했다. 초기에는 2층만 지역아동센터로 운영했는데, 지금은 1층까지 모두 프로그램실로 사용 중이란다.
1층을 들여다보면 온갖 악기들이 즐비하다. 피아노 6대·바이올린 12대·첼로 3대·장구·북 15대 등 음악학원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악기들은 전부 김 대표가 사비를 들여 구입했단다.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얼마든지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리모델링비며 후원받지 못한 물품 구매 등은 모두 자부담이다. 센터 차량이 없다보니 체험학습을 나갈 때면 김 대표가 요양원 차량을 갖고 나온다. 지역아동센터 대표는 아무런 급여도 받을 수 없지만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기꺼이 시간을 내고 있다.
아이들 위한 자부담 아깝지 않아
농어촌 실정에 맞는 방안 필요
“올해 해남군의 지역아동센터 급식예산이 5억 6000만원 정도에요. 28개소의 800여명 아이들이 280일 동안 급식비를 지원받아요. 지난해는 60일 기준으로 지원받았으니 3배 이상 오른 셈이죠”
급식비 지원이 늘기 전에는 틈틈이 농사지은 농산물들을 아이들의 급식에 사용했고, 자비를 들여 간식을 먹였다. 시골은 지역아동센터를 제외하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전무하기 때문에 돈이 모자라도 잘 먹이고 잘 가르치고 싶었다. 지금은 군에서도 관심을 갖고 지원을 위해 노력한단다.
다만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급식비가 아닌 급식 도우미다. 지금은 군과 계약한 자활근로자가 급식 도우미로 파견나오는데, 1년씩 계약해 총 3년까지 연장할 수 있는 형태다. 3년이 지나면 같은 자활근로자와 재계약할 수 없어 새로운 인력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자활근로자의 월 급여는 70~80만원 선. 일 년 내내 바쁜 산이는 농번기철 여성 하루 임금이 7~8만원 정도 돼 급식 도우미를 선호하는 인력이 없다. 게다가 차상위·기초수급자만 가능하기 때문에 조건이 까다로워 시골에서 급식 도우미 구하기란 어려움이 많다.
주사랑 지역아동센터의 급식도우미도 이번달이 계약만료기간으로, 새로운 인력을 구해야해 걱정이 많다. 급식 도우미 없이 사회복지사들이 29명의 아이들과 선생님의 끼니를 챙기면서 아이들을 돌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김 대표는 공공근로나 인력 창출 등의 방안을 통해 급식 도우미를 지원해주거나 계약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방법 등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라고 말한다. 농어촌 지역아동센터 실정에 맞는 현실적인 대안 마련이 있어야 아이들에게도 더 나은 복지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또 지역아동센터와 공교육이 제대로 맞물리지 못하는 점도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최근 학교에서는 방과 후 교실뿐만 아니라 돌봄교실을 운영하는데, 비슷한 내용을 따로 진행하다 보니 효율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산이 내 학교에서 지역아동센터를 배려하고 함께 상생하려 하고 있지만, 교육부 지침 자체가 다시 논의되지 않는 한 괴리감을 좁히기 어렵다는 것이다. 학교와 지역아동센터 각각의 기능과 장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아이들을 위한 정책을 펼쳤으면 한단다.
“지역아동센터들이 제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다보면 아동 복지 환경도 바뀔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현재 시골에는 노인정은 있어도 아이들 놀이 시설은 거의 없지요. 지역아동센터에서 노력하고 있는 만큼 주민들도 함께 관심 가져주셨으면 큰 힘이 될 겁니다”
주사랑지역아동센터에서 받은 사랑으로 남을 위할 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는 김 대표와 김 센터장. 작은 사랑이 아이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두 모녀의 아름다운 동행이 계속해서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