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로움의 정점에 서있는 업종인 금은방. 20여년 전 해남의 금은방들은 찾아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금은방의 수가 20여개에 달했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의 금은방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호황이었던 시절과 비교하면 거래량이 1/3수준 이하로 급감했기 때문이다.

35년 동안 금은방을 운영 중인 모 업주는 “예전엔 금은방들 경기가 꽤 좋았어요. 해남뿐만 아니라 인근 강진·진도·완도에서 오는 손님들로 북적였을 정도죠”라며 옛 금은방의 모습을 회상했다.

30여년 전 업주가 기억하는 24k 순금 1돈(3.75g)의 가격은 4~5만원 선. 물가 수준을 감안해도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다. 읍내 금은방에 따르면 금 1돈의 시세는 지난달 30일 기준 20만 5000원으로,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업주는 “금값이 저렴했을 때는 예물뿐만 아니라 단순한 장신구로 구입하는 손님도 많았어요. 친분이 있으면 돌반지도 많이 했고요. 하지만 지금은 돌반지는커녕 예물하는 손님도 없어요”라고 밝혔다.

다른 업주는 호황을 누리던 금은방이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지난 1997년 IMF가 터지면서라고 말했다. 금을 사는 것이 죄악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고, 이후 금값이 치솟으면서 서민들이 구매하기 꺼리게 됐다는 것이다.

업주는 “금은방을 연지 20여년이 넘었지만 IMF 이후로 금은방이 어려워졌다. 이후 금값이 오르면서 경기 회복이 안 된다”며 “요즘엔 전체적으로 경기가 어려워 결혼 문화도 바뀌는 모양이다. 최근 몇 년간 예물을 맞추러 온 젊은 손님을 받아본 기억이 없는데, 예물을 줄이는 결혼 문화가 정착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데다 결혼 문화가 실용적으로 변하고 있어 필수품이라 여겼던 예물도 간소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목걸이·반지·귀걸이·팔찌 등의 순금세트 예물뿐만 아니라 각종 보석 예물세트들도 수를 줄이거나 아예 맞추지 않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돌반지 등을 통해 금을 선물하는 문화도 사라지는 추세다. 친한 사람들끼리 계를 만들어 금을 구입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게 됐다.

모 업주는 “예전에는 1돈 돌반지를 선물하는 게 지금만큼 큰 부담이 아니기 때문에 돌반지를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순금값 절반인 10만원만 부주해도 충분한 금액이다. 요즘은 친인척도 돌반지를 선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금은방이 결혼준비나 돌잔치 선물의 필수코스로 여겨졌던 인식이 사라지면서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상태다. 금은방을 방문하는 손님들 대부분은 수선손님일 정도다. 또 금을 새로 구매하지 않고 있던 귀금속을 녹여 다시 만드는 주문형태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손님들의 소비심리가 위축돼있음을 알 수 있다.

금 구매는 ‘금테크’라 불리며 재테크 수단으로 여겨졌지만 해남 내에서는 금테크 현상을 찾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금값 가격이 높게 형성돼 있는데다가 언제 하락할지 모르기 때문에 필요한 물품이 아니면 구매를 꺼린다는 것이다.

귀금속과 함께 금은방의 물품으로 자리잡은 시계 역시 찾는 이들이 없다. 대부분의 금은방에서 시계수리기사를 따로 두고 있었을 정도로 인기있는 물품이었지만 지금은 몇 년 동안 판매되지 않는 물품도 있을 정도다.

모 업주는 “시계는 예물로 팔리는 경우는 거의 없고, 군인들이 디지털시계를 구매하러 오거나 할머니들이 저렴한 시계를 사러오는 게 전부다”며 “도시에 시계매장이 많은데다가 면세점에서 구매하는 사람이 늘어나 금은방에서 시계를 찾는 손님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교통이 발달해 쉽게 도시로 나갈 수 있다는 점과 면세점·인터넷·홈쇼핑 등 구매 방법이 다양해진 부분이 거래 감소의 주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모 업주는 “거래량은 감소했지만 전체 매출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금 가격 자체가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이익에서는 큰 차이가 난다”라며 “예전엔 4만원 물품을 팔아도 20%가 남았는데, 지금은 20만원을 팔아도 10%는커녕 세금 떼고 나면 답답할 정도다“고 말했다.

금은방에서도 개별소비세를 부과해 세금부담이 늘어난 점도 금은방 업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한 업주는 하루 종일 수선 손님조차 없을 때가 많아 담배까지 판매하고 있을 정도라며 금은방의 썰렁한 모습을 일축했다. 변해가는 결혼 문화와 금 선물 풍속도는 금은방에서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부분이기에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농산물 가격이 올라 농촌 경기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상 해남의 금은방 전망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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