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부족해서 태어난 지 30일 된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했어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지죠. 하지만 이 일이 보람차다는 생각엔 변함없어요”

지난 2007년 개소한 산이 상공지역아동센터는 해남 내 최연소 센터장이 있는 곳이다. 바로 일찍부터 아동복지에 꿈을 키워온 김지영(30)센터장이다.

산이 초송리에서 태어나 산이초·중학교를 다닌 산이 토박이인 그녀. 학창시절부터 보육교사의 꿈을 키웠던 김 센터장은 대학 졸업 후 4년 동안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울고 웃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상공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던 센터장님의 부탁으로 지난 2010년 상공지역아동센터를 맡게 된 것이다. 센터장을 맡은 그녀의 나이는 고작 26살이었다. 걱정부터 앞섰지만 젊음을 믿고 부딪혀보기로 했단다.

막상 운영을 시작하니 지역아동센터 운영과 동시에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지원금은 아이들 식비와 운영비를 대기에도 모자라 건물 보수비용은 자비로 부담했다. 아이들과 활동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면서도 쌓여있는 서류작업을 해치우는 슈퍼우먼도 돼야 했다.

센터장으로 일하며 사랑스런 첫째 아들을 낳았지만, 일을 쉬고 갓난아기를 돌볼 짬조차 나지 않았다. 결국 겨우 30일 된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몸조리도 하지 못한 채 센터에 나왔다. 둘째 아이는 1년 동안 함께 센터로 출퇴근하며 돌봤다.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사들의 근무 환경이 열악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도 꺄르륵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큰 힘이 된다. 19명의 아이들 중 17명이 여자아이들인데, 여자아이가 많다보니 서로를 자매처럼 여기며 오순도순 지낸다. 야외 체험활동을 가면 알아서 동생들의 손을 잡고 급식까지 똑소리나게 챙긴단다.

아이들이 워낙 활동적인 놀이를 좋아해 한 달에 1번 ‘플레이데이(Play Day)'를 지정했다. 다함께 모여 상공 지역아동센터의 자랑인 잔디 앞마당에서 체육행사를 하거나 뿅망치, 딱지 등 간단한 게임들을 하는 시간이다. 얼마나 신나게 뛰어노는지 밥 두 그릇은 뚝딱 해치운단다.

플레이데이뿐만 요리실습, 생일잔치 등 다양한 자체 행사들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해남교육네트워크에서 지원받는 강사수업, 지역아동센터 중앙지원단의 아동시범문화예술교육사업 일환으로 무용·미술수업까지 진행해 일주일이 금세 지나간다.

프로그램이 다양하다보니 친구 따라 언니 따라 오는 아이들이 많다. 정원인 19명보다 많은 아이들로 시끌벅적한 이유다. 아이들이 놀러 오면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급식도 먹여 보낸다. 비용이 부담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있는 곳이라는 신념으로 웃으며 반긴다.

무관심에서 비롯된 지원금 오해
이해와 포용, 아이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정원을 늘리면 아이들을 더 받을 수 있겠지만, 센터장으로서 받는 인건비를 센터 보수에 쓸 정도로 여유가 없다. 창문이 없어 아이들이 들어가지 않던 방은 자비 160만원 들여 공사했고, 낡은 싱크대는 김 센터장의 남편이 80만원을 보태줘 고칠 수 있었다. 환경개선사업에 해당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건물을 보수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이 많다보니 각종 가구들의 고장도 잦고 생활용품도 빨리 떨어져요. 운영비를 보수공사에 쓰는 건 꿈도 못 꾸죠. 지원금으로는 방충망 고치는 것도 힘들 정도에요”

군에서도 올해부터 급식비를 올려주는 등 아동복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을 돌보는 사회복지사들을 위한 처우는 달라지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지역아동센터의 사회적 인지도가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단다.

지자체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의 관심도 절실하다.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오해들이 있어서다. 아이들을 무료로 돌보는 만큼 지원금을 많이 받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겪을 때마다 힘이 빠진다. 주민들도 지역아동센터에 관심을 갖고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길 바랄 정도다.

부모님들의 적극적은 참여도 필요하다. 4계절 내내 농사와 절임배추로 바쁜 산이면이다 보니 일에 치인 부모님들이 아이들 활동에 소홀할 때가 많단다. 부모교육을 실시해도 참여수가 많지 않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춘기가 온 아이들은 가정에 대한 불만을 안고 있을 수 있어 소통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걸 이야기해주고 싶단다.

김 센터장은 지역아동센터가 아이들이 변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도록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 의뢰해 상담시간을 운영 중이다. 조금 더 전문적인 상담이 도움이 될 거란 판단에서다. 다행히 처음엔 머뭇거렸던 아이들도 점차 마음을 열고 상담을 받아들이면서 변해가고 있단다.

“아이들이 학교보다 지역아동센터를 더 편하게 대해요. 학습적인 측면이 자유롭고 놀이활동이 많아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거든요. 우리가 아이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고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보호자들도 아이를 이해할 계기로 삼고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해요”

웃음이 많아지는 아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다짐을 되새긴다는 김 센터장. 아이들이 살기 좋은 지역은 모든 주민들이 살기 좋은 지역이라는 믿음을 갖고 따뜻한 지역아동센터를 만들겠다는 다짐이다. 잔뜩 쌓인 업무 속에서도 그녀가 미소를 잃지 않는 건 아이들이 그녀의 다짐에 힘을 불어넣어주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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