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제1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최지월의 《상실의 시간들》은 죽음을 통해 삶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점이 높이 평가돼 총 246편의 경쟁작을 제치고 문학상을 받았다. 실제로 저자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죽음에 대한 정리를 위해 창작됐으며 보통 사람이 보통의 삶에서 겪는 보통의 죽음, 평범한 죽음을 공유할 수 있는 작품으로 완성됐다.

《상실의 시간들》은 주인공 석희가 엄마의 죽음을 치러내면서 사십구재에서 탈상인 100일까지 세세하고 꼼꼼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육체적 죽음이 사회적 죽음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언젠가는 누구나 목격해야 하는 부모의 죽음을 매우 현실적으로 서술한다.

이 책은 주인공 석희의 엄마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이하며 시작된다. 병원 응급실로 실려 온 엄마는 사망진단서를 받기까지 환자인 채로 대기 중이었고, 아버지는 응급실 앞 대기실에서 엄마의 죽음을 처리해줄 ‘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자매가 의사의 서명을 받고 장례식장을 이용하게 된 뒤에야 장례 의식의 주인공이 됐다. 석희는 황망한 정신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빈소며, 조문객을 위한 식사, 술, 떡 등을 골라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석희는 엄마를 추억하거나 슬퍼하기는커녕 너무나 멀쩡해 보이는 아버지가 비정상적으로 보였다.

석희의 엄마가 심장이 나빠지기 시작한 건 아빠의 퇴직과 언니인 소희의 결혼과 이민, 석희의 불안정한 생활, 은희의 박사 진학 등이 있었던 시기와 맞물린다. 가정에 대한 결정권을 좌지우지하던 아버지가 퇴직한 직후 엄마의 생활을 간섭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평생 도맡아온 살림에 대한 권한을 뺏겼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여겼던 자식들의 삶은 알 수 없는 사물로 변해버렸다. 몸은 쇠락해 가는데 감당하기 어려운 변화들이 일상에서 벌어진 것이다.

주인공 석희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꾸역꾸역 밀려들어오는 평범한 일상을 마주한다. 33년을 군에 바쳤던 권위적인 아버지와 말싸움을 하고, 아버지 혼자 집안일을 할 수 있도록 삶을 정비하는 일이 급선무가 돼 매일 전쟁을 치른다. 당연한 듯 있었던 존재의 상실은 점차 어찌할 수 없는 수동적 슬픔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능동적 슬픔의 힘을 느끼게끔 한다.

저자는 엄마라는 존재는 원래 엄마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며 엄마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과 시작되는 것에 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풀어낸다. 또 삶을 지속한다는 건 끊임없이 낯설어지고, 새로워지고, 고독해지는 일이라고 전한다.

형제도 자라서 타인이 되고, 타인이 만나서 가족이 되고, 그 가족은 다시 서로를 헤아리지 못하는 타인으로 변해 헤어진다. 만난 사람은 헤어진다는 것을 석희와 석희의 엄마를 통해 드러낸다.

인생이란 영원할 것 같은 생의 한 가운데를 지나, 결국 찰나였음을 깨닫는 여정이 아닐까. 《상실의 시간들》은 그 안에서 있는 힘을 다해 살아가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나지막하게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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