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로힘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지난 8월 현대 중공업 견학 후 경주 박물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간혹 지역아동센터가 필요한 이유가 있냐는 질문을 받아요. 저는 반대로 생각해보라고 말합니다. 지역아동센터가 없다면 지금 이 곳에 다니는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 하루를 보내게 될까요?”

엘로힘 지역아동센터는 북일의 유일한 지역아동센터다. 이곳이 문을 연 것은 지난 2007년 10월 1일, 엄대중(45)센터장과 아내 이현화(43)씨가 북일 수동교회에 오게 되면서다.

송지 금강리가 고향인 엄 센터장은 자신이 목사의 길을 걷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단다. 어릴 적부터 전도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들어도 정치외교학에 관심 있던 그는 ‘하늘에서 별 따기보다 어렵다’며 흘려들었을 정도였다.

그러다 20대부터 성경 공부를 하면서 목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난 2002년에는 신학교로 진학해 신학과 함께 사회복지도 함께 전공했다. 사람을 돌보는 것도 종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여수, 논산 등 각지를 거치며 신앙생활을 하다 지난 2006년 고향인 해남으로 돌아와 북일 수동교회로 부임하게 됐다. 여수에서 만난 아내 이 씨와 함께였다. 아내도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었기에 부부는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필요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아이들을 챙기기로 마음먹었다.

유독 조손가정과 한부모가정 아이들이 많은 게 마음에 걸렸고, 학교가 끝나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몰라 TV나 컴퓨터에 빠지는 게 안타까웠다. 게다가 마을마다 아이들 수가 줄어들다보니 아이들끼리 노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제가 어릴 때는 한 마을에 아이들이 10명이 넘었어요. 고향 금강리에도 금강초등학교가 있었을 정도로 수가 많았죠. 제가 북일에 왔을 땐 한 마을에 아이들 3~4명이 고작이었고, 지금은 아이들이 아예 없는 마을도 있어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끼리 놀기엔 수가 부족해요”

하지만 아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건물이 없었다. 엄 부부는 지역아동센터를 세우기 위해 자비 1000만원을 들여 교회 옆 건물 화장실 수리부터 자잘한 건물 보수를 하고 건축물 대장과 각종 서류를 신고하는 것까지 온갖 일들을 처리하느라 동분서주했다.

그렇게 엄 부부의 땀과 노력으로 엘로힘 지역아동센터가 문을 열었고, 일주일 새에 34명의 아이들이 뛰어 노는 시끌벅적한 곳이 됐다. 북일에 아이들을 위한 곳이 없어 단기간에 많은 아이들이 몰린 것 같단다. 현재는 29인 시설로 운영 중이다.

“정말 즐거움의 연속이었어요. 주변의 아이들 열 명 정도를 데리고 시작했는데, 지역아동센터가 문을 열었다는 소문이 나자 아이들이 몰려들어 처음 예상의 3배가 됐죠. 오늘은 아이들과 어떤 하루를 보낼지 기대돼 매일 행복했어요”

간단한 숙제 지도와 함께 북일초에서 25분 거리인 엘로힘 지역아동센터로 오는 길을 함께 걸으며 자연스럽게 주변의 자연과 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마을회관 앞마당에서 함께 뛰어놀고, 두륜산 자연체험학습도 다녔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를 반복하는 것 보다 학교에서 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채워줘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지역아동센터 운영 초기에는 군에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태였고,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의 수에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았다. 들이는 비용은 있지만 받는 비용은 없다보니 교회에서 받는 사례비도 전부 아이들을 위한 간식비와 차량 유지비로 투자했을 정도다.

그렇게 6개월을 운영하자 자부담에도 한계가 왔다. 아내가 순복음 교회 등에 문을 두드려 1년에 월 30만원씩 지원을 받아 운영에 보탰고, 간혹 간식을 챙겨주는 부모들이 있어 한숨 돌렸다. 이 곳 하나만을 보고 달려와 준 아이들을 위해 운영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이들 위해 기꺼이 비용 자부담
아동복지는 후세를 위한 행복한 투자

지난 2008년 정식 등록을 마치면서 2009년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운영은 조금 더 나아졌지만 아이들과 뛰어노는 시간은 줄었다.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며 살펴야 할 교사가 많은 행정적 업무까지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를 구하는 것도 힘든 문제지만 간신히 구한 사람을 오래 일하게끔 하는 건 더욱 어려운 문제였다.

“모든 지역아동센터에서 힘겨워 하는 부분이 서류작업이에요. 3년마다 하는 평가도 준비해야 하고요. 평가도 사회복지사들이 더 발전할 수 있고 힘이 되는 평가여야 하는데, 지금은 지역아동센터의 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기준이라 오히려 힘이 빠지죠”

현재 모든 지역아동센터에서는 각 프로그램 일지와 학습지도 계획안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에 대한 깊은 상담이 이뤄진다. 일명 사례관리다. 아이가 지역아동센터에 들어온 직후부터 초기상담이 이뤄지고 꾸준히 상담을 하는데, 한 아이에 대한 서류만 해도 50여장이 훌쩍 넘는다.

다행히 전국에서 사례관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다 보니 내년부터는 사례관리를 백지화시키고 다른 방안을 내놓는다고 한다. 지역아동센터협의회에서도 현실에 맞는 평가 기준을 만들어달라고 꾸준히 제기하고 있어 다함께 노력하다보면 아동복지가 더욱 원활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거란다.

“해남에서도 28곳의 지역아동센터가 1년이면 1000여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요. 아동복지의 필요성을 느껴 생겨난 곳이고 실제로도 학교, 가정과 다른 복지 혜택들을 제공하고 있죠. 하지만 지역의 관심과 지원은 부족한 편이에요”

아이들이 체험학습을 가게 되도 보통 30여명 되는 아이들이 함께 움직여야 하지만 대형 버스를 갖춘 지역아동센터가 없어 여러 대의 차량에 나눠 타야 한다. 체험학습 때마다 버스를 대절하기에는 부담이 큰 탓이다. 군이나 교육청과 연계해 버스를 대여할 수 있으면 좋겠단다.

“아이들을 더 나은 길로 인도하고 싶다보니 아동복지 체계에 관심도 많고 변화도 요구하게 돼요. 아이들을 위해 일하다 보면 그게 어느 샌가 스스로에게 행복으로 다가와 지역아동센터 운영의 원동력이 되죠. 앞으로도 아이들이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따뜻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몇 십년 후에도 지역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아동복지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한다는 엄 센터장. 그의 노력이 값진 열매로 돌아올 수 있는 해남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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