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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한강 다리 위에 서 있다. 금방이라도 다리 아래로 몸을 던질 것만 같지만 그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투명인간이다. 그 곁을 지나던 또 다른 투명인간이 그를 알아본다. 그의 이름은 ‘김만수’. 소설은 시간을 되돌려 김만수 주변인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일대기를 들려준다.

두메산골 개운리에서 3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난 만수. 만수의 가족들은 그 시절 누구나 그랬듯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끈질기게 삶을 이어간다. 텔레비전도 전기도 없던 시절 꼬박 20리 길을 걸어 학교에 다니고 채변검사, 혼분식운동 등이 흔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만수의 소박한 시절은 베트남전에 파병된 큰형이 고엽제로 인해 목숨을 잃은 뒤 서울로 이사하면서부터 끝나버렸다. 변두리 단칸방 생활을 지탱하기 위해 노동에 시달리던 누이들, 연탄가스 중독과 같은 갑작스러운 사고 등 산업화의 물결과 굴곡의 현대사의 흐름에 휩쓸린다. 만수가 겪어야만 했던 크고 작은 고난과 비극은 중장년층에게는 결코 낯설지 않은 일일 것이다.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이 된 만수는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가족을 건사한다. 노력 덕분인데 뒤늦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도 꾸렸다. 그러나 만수가 다니던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고, 손해배상을 메워야하게 되면서 시련이 닥친다.

자신을 희생한 만수에게 돌아오는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노동과 주변 사람들의 매몰찬 외면, 그리고 더 큰 불행일 뿐이다. 마침내 그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때까지, 비극은 끝내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수는 이렇게 말한다. “죽는 건 절대 쉽지 않아요. 사는 게 오히려 쉬워요. 나는 포기한 적이 없어요”라고.

만수의 주변인들은 그들이 각자의 처지에서 각자의 시선으로 지켜본 만수의 일면을 짧은 이야기로 만들어 낸다. 이 이야기가 모여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인생을 그려내고, 그들 각자가 겪는 세상살이의 한 대목들을 모아 수십 년에 걸친 시대의 흐름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비슷한 시기를 겪은 사람만이 알고 있을 기억과 감각을 세밀하고 정교하게 복원해 내 경험하지 못한 이들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너무나 흔해서 눈에 띄지 않지만 누구보다 기막힌 인생을 살아온 사람. 그렇게 ‘김만수’라는 이름은 우리 시대의 지극히 평범한, 그래서 더욱 비범한 인간을 가리키는 이름이 된다.

끈질기게 닥쳐오는 비정한 현실의 무게 속에서 끝내 투명인간이 되어야만 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가족과 삶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뒷모습이 숭고하기까지 하다.

《투명인간》은 우리 주변 어디엔가 있을, 우리가 돌아보지 못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고 나의 인생을 돌이켜보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나의 아버지, 누이, 그리고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투명인간》을 읽고 주변을 돌아보자. 지극히 평범한 삶 속에서, 기막히게 살아온 우리의 이웃을 잊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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