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쇄동

                                                    이지엽

살며 하늘 그리운 날 혹 있을지 모르지만
심중에 못 다한 말 그 말 같은 붉은 설움
예 와서 다 쏟아놓고 눈 들어 산을 보게

병풍바위 두른 배경 달뜨듯이 살아가도
생은 늘 배반한 듯 거꾸로만 달려가고
오늘의 기와 파편들 꽃밭인 듯 구름인 듯

말하거나 웃지 않아도 짐짓 거기 풍경 밖을
이쯤에서 모른 채 눈 감고 돌아 선다면
절정은 늘 후렴 같고 몸 떨리는 시위 같아

평화가 눈물겨운 기도의 제목이 될 때
물매화 자주쓴풀 그예 싱그런 계곡이여
감춰둔 비밀을 풀어 절벽처럼 가을이 깊다


<시작메모>
고산 윤선도 선생이 처음 이곳을 발견하고 지은 ‘초득금쇄동’ 이란 작품에서 ‘귀신이 다듬고 하늘이 감춰온 이곳, 그 누가 알랴 선경인 줄을 깎아지르나니 신설굴이요 에워 두르나니 산과 바다로다.’라고 하였다. 산세가 험하고 급해서 그 아래로 왕래하면 단지 단애와 취벽만 보이고 높이 솟은 뾰족뾰족한 산봉우리 같고, 저녁놀이 서린 첩첩한 산봉우리 같아서 골짜기가 거기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으니 그 비경이 자못 궁금한 곳이다. 올 가을엔 이곳 금쇄동에 가서 눈물겹게 울어볼 일이다. 다툼과 울분의 이 땅 평화가 오게 해달라고.

 

 
 
<이지엽시인 약력>
-해남군 마산면 출신
-1982년 한국문학 백만원고료 신인상과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어느 종착역에 대한 생각>과 시조집<사각형에 대하여>외 다수.
-중앙시조 대상, 유심 작품상 등 수상, <현대시 창작강의>외 저서 다수.
-계간 <열린시학>과 <시조시학>주간. 현재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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